[르포] ‘찜통’ 속 마트 직원들 “사망한 코스트코 근로자 남 일 아냐”

이신혜 기자 2023. 7. 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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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 온열질환 사망 직원 나왔는데 ‘5분 휴식’ 추가가 전부
그늘 없는 주차장 밖보다 더운 지하 창고에서 일하는 마트 직원들
“정부 지침 강제성 없어...열악한 환경 그대로 노동자에 노출”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13일 오전, 코스트코 일산점에서 카트를 정리하는 근로자의 모습. /이신혜 기자

“코스트코 중에 일산점이 제일 힘들 거예요. 고객 70~80%가 공용 주차장에 카트를 놓고 가서 더운 날에도, 비 오는 날에도 저희가 다 옮겨야 합니다.”

13일 오전 코스트코 경기 일산점. 호우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비가 퍼붓는 가운데 노란 우비를 입은 마트 근로자들이 마트 앞 공용 주차장에서 카트를 계속 옮기고 있었다.

직원 A씨는 “마트 지침상 고객이 두고 간 카트를 우리가 다 옮겨야 한다”며 “덥고 습한데 쉴 틈이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카트를 옮기던 직원이 더위에 쓰러져 사망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그에게 사고 이후 본사 방침이 달라진 게 있냐고 묻자 “원래는 3시간 근무에 15분 휴식이었는데, 지금은 20분 휴식으로 5분 더 늘어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근무하던 한 B씨도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그늘막 하나 없는 주차장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카트를 옮겨야 한다”며 “(사망 사고가 발생한) 하남점보다 여기(일산점) 근무가 더 힘들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최고 기온이 27도에 달했던 12일에 만난 마트 3사(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직원들도 최근 코스트코의 온열질환 사망 사고가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은 바깥보다 더 더운 환경에서 땀이 맺힌 채 일하고 있었다.

12일 낮 12시 외부기온(오른쪽, 27도)보다 더 높은 기온(왼쪽, 28.9도)이었던 서울의 한 이마트 실내 지하주차장. /이신혜 기자

이날 찾은 서울의 한 이마트 지하 창고 내부 온도는 29도에 달했다. 같은 시간 외부 온도가 27도인 점을 고려했을 때, 바깥보다 무더운 근무환경이었다. 습도도 70% 후반~80% 초반대로 높았다.

지하 창고에서 만난 직원 C씨는 “작년, 재작년과 비교해도 일하는 공간이 너무 덥다”며 “휴게실에 포도당과 물이 준비돼 있지만, 땀이 계속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또 다른 근로자 D씨는 “회사에서 목에 두르는 휴대용 선풍기 등을 주지만 땀이 나서 되레 짐이 돼 그냥 더울 때는 참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상온 창고에서 하역한 물건을 배치하던 한 직원은 “마트 안에서만 움직여도 더운데, 여기는 선풍기가 있어도 (더워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E씨는 “매장에 진열할 상품을 보관하고 정리하는 공간에서 일하는데, 매장 개점 전에도 에어컨을 켜주지 않아 땀으로 온몸을 적신다”며 “오후 7시 이후에는 에어컨을 아예 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2일 오후 7시 35분 서울의 한 롯데몰(마트) 실내 지상 주차장의 기온 및 습도(왼쪽). 같은 시간 외부 온도는 26도로 지상 주차장의 기온보다 낮았다. /이신혜 기자

이날 오후 7시 30분 서울의 한 롯데마트(롯데몰) 지상 주차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27도의 내부 기온 속에서 땀을 흘리며 주차 안내를 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이동형 에어컨이 26도로 맞춰져 있었지만, 찬바람을 느끼긴 어려웠고, 떨어져서 주차 안내를 해야 해 사실상 도움이 안 되는 상태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상청이 폭염 주의보나 폭염 경보 등을 발령했을 경우 ▲시원한 물 제공 ▲근로자가 일하는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그늘진 장소 마련 ▲1시간 주기로 10~15분 이상 규칙적 휴식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최소화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마트들은 근로자의 온열 질환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근로자들을 위해 얼음물 및 식염 포도당을 지급해 탈수를 예방하고 있으며 옥외 작업 시 쿨스카프 등을 지급한다”며 “1시간 주기로 10~15분 휴식 시간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측은 “온열 질환 예방과 건강 관리에 관한 업무 기준을 마련해 점포별로 시행하고, 수분 섭취·휴식 등 ‘혹서기 근무 가이드’를 상시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점 내 물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반바지 착용이 가능하고, 사무실과 휴게실 등 냉난방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스트코는 지난달 근로자 사망 사건 관련 점포별 근무환경 변화가 있냐는 물음에 “입장이 없다”고만 답했다.

13일 코스트코에서 카트를 옮기는 한 근로자의 모습. /이신혜 기자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권고’ 수준에 그쳐 강제성이 없고, 노동자 사고 발생에 따른 기업 부담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건희 코스트코 노조위원장은 “고용노동부의 지침은 강제성이 없어 사업자가 하기에 달렸다”며 “사망사고가 났던 하남점은 천장 공기순환기도 미가동 상태였고, 양평점이나 일산점 같은 경우 그늘막 없는 곳에서 근무하는 옥외 작업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근로자 수를 늘려 폭염 등 열악한 상황에서 교대 횟수를 늘리고, 냉방 등 시설을 갖춘 휴식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기업이 노동자 사고가 발생해도 그에 따른 비용이 안전예방조치 비용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이 문제”라며 “(코스트코 사망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검토를 철저히 하고 기업이 노동자 사고 발생 시 타격을 받을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 교수는 “기업은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을 비용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외국 사례를 봐도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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