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나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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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도서관의 사서 아가씨에게 책에 낙서를 했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사과했음에도 계속 무안을 주는 젊은 사서에게 '내가 아무래도 독서 습관이 잘 못 들은 것 같다,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변명을 하면서 도서관을 나왔지만 영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내 책들이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도서관에서 얌전하게 머물러 있기보다 그들과 같은 찐 독자와 만나 한 번이라도 더 애정 어린 손길을 받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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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도서관의 사서 아가씨에게 책에 낙서를 했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지난 몇 차례. 시간에 쫓기느라고 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중요 표시를 한 후에 채 지우지 못하고 반납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내가 번번이 책에 낙서하는 요주의 인물로 입력이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그날은 작심하고 내가 체크한 부분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은 후, 지우개로 지우느라고 열람실에서 거의 두 시간가량을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가 펼쳐 보이는 반납 책자 네 권 중 한 권에는 연필로 그은 밑줄과 강조하는 표시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과했음에도 계속 무안을 주는 젊은 사서에게 '내가 아무래도 독서 습관이 잘 못 들은 것 같다,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변명을 하면서 도서관을 나왔지만 영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독서할 때마다 나는 손에 연필을 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좋은 구절이 눈에 띄면 곧바로 체크하고, 다 읽은 후엔 그 부분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 바쁠 때는 사진을 찍어 남겨둔다. 이렇게 해서 내 핸드폰에 저장된 책만도 수십 권이다. 그러므로 내가 연필로 무엇인가를 표시하는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일 뿐, 낙서와는 개념이 다르다. 솔직히 내 소유의 책에는 색색의 볼펜까지 등장한다.
앞서 읽은 이들이 그어놓은 밑줄을 읽으며 공감하는 것 또한, 도서관을 찾으며 누리는 나의 은밀한 기쁨이다. 아주 오래전, 몇 번은 나도 나와 비슷한 부류의 독서 친구를 위해서 친절하게 밑줄을 남겨놓은 적이 있다. 책이라는 보물 꾸러미 속에서 캐낸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어떤 이에게는 그렇게도 납득이 안 되는 몰염치한 짓일까?
일찍이 까볼린 봉그란(프)이라는 여류소설가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서 발견한 밑줄과 조언에 따라 독서 여행을 하는, 신선함과 발랄함이 가득한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밑줄 긋는 남자'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프랑스의 모든 매스컴으로부터 극찬받았고,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며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사서의 눈으로 보면 본인에게 쓸데없는 수고를 하게 하는 중범죄도 이처럼 빛나는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내 책들이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도서관에서 얌전하게 머물러 있기보다 그들과 같은 찐 독자와 만나 한 번이라도 더 애정 어린 손길을 받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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