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가 죽는다] ④"마약중독은 질병…암처럼 조기에 치료해야"
(공주=연합뉴스) 이슈팀 = "마약 중독은 질병입니다. 일단 병이 생기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빨리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중독 전문가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마약 중독은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법무병원(옛 공주치료감호소)은 심신장애가 있거나 알코올·마약에 중독된 범죄자를 치료하는 법무부 산하 병원이다.
조 원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8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9년에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공주정신병원(현 국립공주병원)으로 옮긴 뒤 국립부곡병원장, 을지대 을지중독연구소장, 을지대 강남을지병원장 등을 거쳐 20년 만인 2019년에 다시 첫 직장인 국립법무병원으로 돌아왔다.
그의 경력이 보여주듯 조 원장은 30여년간 중독 환자를 치료하고 중독 문제를 연구해온 중독 전문가다.
그런 그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마약 중독=질병'이라는 인식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우선 중독자에게 그런 인식이 없다. 조 원장은 "중독자의 99%가 본인이 중독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에 치료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변 사람들도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끊을 수 있지, 왜 못 끊냐'며 중독자들을 비난하곤 한다.
조 원장은 그러나 의지만으로 질병에서 나을 수 없듯이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중독은 재발을 특징으로 하기에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라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단약(斷藥)은 하기는 쉽다. 마약을 안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마약이 주는 강렬한 쾌감의 기억을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성관계를 가지는 등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했을 때 우리 뇌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늘어나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행동을 반복해서 하도록 우리 뇌의 '보상회로'(reward pathway)에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마약을 복용해도 보상회로에 도파민이 늘어난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이 증가한다. 그만큼 더 강한 쾌감을 준다는 의미다.
조 원장은 "우리 뇌는 어떤 강렬한 경험을 겪게 되면 이를 중요하다고 간주, 뇌 속에 저장해 평생 유지한다"며 "마약을 남용했을 때 느끼는 강렬한 기분도 뇌 속에 저장돼 평생 안 없어지기에 계속 마약에 대한 갈망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죽거나 치매에 걸리면 약을 끊을 수 있다'라는 중독자들간의 농담을 언급하며 마약 중독의 무서움을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마약 남용으로 우리 뇌가 망가진다는 점이다.
마약을 남용할수록 우리 뇌의 보상회로에서 생겨나는 도파민의 양이 줄어든다. 똑같은 쾌감을 느끼려면 그만큼 더 많은 마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의 생활에도 같은 영향을 미친다. 평소 먹고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가 이전보다 떨어진다.
조 원장은 "쾌감을 느끼려고 마약을 했으나 보상회로가 파괴되니깐 역설적으로 삶의 재미가 없어지게 된다"며 "그래서 그걸 견디지 못해 또 마약을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뇌 조직의 파괴가 심해지면 정신병으로도 발전한다. 누군가 자기를 욕하거나 험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환청이나 피해망상도 생긴다.
그가 1988년 공주치료감호소에 부임해 처음 맡았던 환자도 그런 사례였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에 취해 6개월이 된 자기 딸을 죽인 남자였다. 환각 상태에서 인형이 자기한테 욕한다고 착각해 아기를 길바닥에 내던졌다고 한다.
조 원장은 "마약 남용으로 정신병적 상태가 돼 자기 딸이나 부인, 가족을 살해한 사람도 있고, '묻지마 살인'처럼 지나가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많다"며 "쉽게 말하면 마약류는 정신병을 만드는 약"이라고 경고했다.
마약 중독의 폐해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조 원장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들 주변엔 사람들이 남지 않는다. 먼저 부인과 자식이 떠나고 부모도 결국 의절한다. 친구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약에 취해 있으니 직장을 다니거나 생업을 영위할 수도 없다. 궁핍한 삶이 중독자들이 맞이하게 된 삶의 결론이다.
조 원장은 "말기 중독자들은 다 생활보호 대상자들"이라며 "이렇게 다 잃고 바닥을 치고서야 후회하고 치료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독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나아가 중독 회복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잘 관리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도 했다. 만성질환자가 평소 건강관리에 신경 쓰기에 일반인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듯 말이다.
그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들은 ▲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면 불법행위도 저지를 수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 불규칙한 생활을 하며 ▲ 책임감이 부족하고 ▲ 거짓말을 자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중독자가 마약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특성을 없애야 한다. 조 원장은 "마약중독에서 제대로 회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정직하게 살고, 책임감 있고, 규칙적이며 규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약을 유지하려면 가치관이나 생활양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그래야 진정한 치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런 회복자들은 다른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에서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국에선 중독치료시설의 일차 상담자들 상당수가 이런 회복자들이다. 일본은 회복자들이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인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를 만들어 중독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조 원장은 마약 중독 회복자가 중독 치료·재활에 참여하면 그 효과가 상당히 좋다며 이는 "회복자들이 중독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독자들의 눈빛만 봐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중독자들 입장에선 '나도 저렇게 회복될 수 있구나'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1999년 공주치료감호소를 나온 뒤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과 매달 둘째주 화요일에 만나는 모임인 '이화모임'을 만든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이화모임은 일종의 중독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이다.
이후 이 모임은 2004년에 정식으로 마약중독자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인 '익명의 약물중독자들 모임'(NA·Narcotics Anonymous)으로 발전했다. 이때 일본 NA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이 NA 출신 회복자들이 2012년엔 국내에 다르크를 만들었다. 이때에도 일본 다르크 회원들이 3천만원을 지원해줬다.
조 원장은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암 치료의 성공률이 높아지듯 중독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차원에서 중독자가 법에 저촉됐을 때 치료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물치료법원(Drug Court)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법원은 판사의 주도하에 약물중독자의 치료에 중심을 두는 재판을 진행하는 특수 형태의 법원으로, 1989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처음 도입됐다.
조 원장은 "마약 투약이 범죄인 것은 맞지만 범죄의 원인인 중독은 질병이기 때문에 벌만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중독은 "치료가 재범 예방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독 치료에 들어가는 1달러가 범죄 관련 비용 7달러를 줄여준다는 미국약물남용연구소(NIDA·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중독 치료의 비용 효율성을 설명했다.
게다가 중독자가 건강해져 다시 일을 하게 되면 건강 비용도 절감되고 생산력도 높아진다.
조 원장은 "중독자 치료가 훨씬 경제적이고 여러 이득이 있기에 전 세계적으로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중독자 치료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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