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백지화한 '양평 고속도로'…국토부, 되레 꽁꽁 묶였다

나원식 2023. 7.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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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백지화 선언…국토부 내 TF 구성 총력 대응
야권·경기도 등과 연일 공방…"가짜뉴스로 사업 불가능"
국감·총선까지 현안 밀릴라…안팎서 우려 목소리 커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돌발적으로 선언한 이후 국토부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경기도와 야권 등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콕 집어 비판하는 등 강경 대응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정국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번 이슈에서 국토부가 최전선에 선 듯한 모양새다.

국토부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 장관과 국토부는 정치적 공세로 인해 더 이상 사업 추진이 어렵다며 백지화를 선언했지만, 되레 이로 인해 국토부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국회 등에서 다른 주요 현안들이 줄줄이 밀려날 수 있다는 걱정 어린 시선이 나오고 있다.

/사진=국토교통부 홈페이지 화면 캡처.

국토부 내 TF 꾸리고…일각 주장에 일일이 반박 자료

국토부는 최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한 입장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연일 내놓으며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8일에는 국토부 도로국 내에 2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한 현안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주목받기도 했다. 정부 부처 내부에서 직원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TF가 꾸려진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국토부는 이달 들어서만 13일간 총 8건의 설명 자료를 통해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특히 지난 9일 원희룡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 이슈가 더욱 커지자 최근에는 하루에 2~3건의 자료를 내놓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백원국 국토부 2차관이 직접 나서서 출입기자단 백브리핑을 열었고, 13일에는 현장 취재를 진행했다. ▷관련 기사: [르포]국토부 따라 양평 가보니...주민들 "대안 노선 OK·백지화 NO"(7월 13일)

지난 12일에는 경기도와 날 선 공방을 펼치며 주목받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1조 7000억원 규모의 고속도로 사업이 장관의 말 한마디로 백지화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여러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자 국토부는 즉각 "'변경안 등장 과정에 의혹이 있다'고 한 경기도지사의 발언은 매우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 자료를 내놨다.

국토부는 이 사업 백지화 논란과 관련해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가짜 뉴스 등으로 지속적인 의혹 부풀리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므로 부득이 백지화를 발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원 장관은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번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기도 했다. 국토부는 이 영상을 국토부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했다.

원 장관은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백지화 말고는 답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약 25분짜리 영상을 통해 일각의 주장을 일일이 반박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면 민주당의 거짓 선동에 의한 정치 공세가 깨끗이 정리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2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서울 -양평 고속도로 사업 관련 경기도지사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사업 추진 어렵다" 외쳤는데…되레 정쟁 한복판에

원 장관과 국토부가 이번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이유는 정치 공세로 더 이상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기자수첩]양평고속도로, 왜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판을 엎었다(7월 12일)

원 장관은 이와 관련 "처음에는 전면 재검토 지시를 했지만 (민주당이) 국정 농단 특혜 의혹 몰고 가는 걸 보니 그렇게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업 계획을 완전히 없앤다는 게 아니라 정쟁이 끝난 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는 논리다.

이같은 원 장관의 기대(?)와 달리 되레 국토부가 이번 이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조차 이번 사업 백지화 논란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토부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며 선을 그은 만큼 국토부가 앞으로도 전면에서 공세에 대응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 안팎에서는 벌써 이번 이슈로 다른 주요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번 이슈가 올해 하반기 국감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우리 기관의 주요 현안과 관련한 법안이 조만간 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양평 고속도로 이슈로 일정이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으로서는 언제 제대로 다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정쟁에 정부 부처가 직접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나 철도, 공항 등 대규모 기반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곳곳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잡음이 나타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정치적 공세가 있을 때마다 사업을 중단할 거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여당이나 야당이 백지화 등을 주장하며 정쟁에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정부 부처가 정쟁에 직접 참여햐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 부처라면 해당 고속도로의 결정 과정 등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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