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훈련 하고, 무기도 사주기까지… ‘동맹 강화’가 만든 결과는 [박수찬의 軍]
동맹 강화와 미국산 무기 구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과 아시아 안보의 큰 특징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전쟁의 공포에 유럽은 미국 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기능을 강화하고 연합훈련을 실시하며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다연장로켓)와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국산 무기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한국도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워싱턴선언을 통해 미국 전략자산과 한국군 전략무기를 한층 밀접하게 결합하고, 13일 미군 B-52H 폭격기가 한반도에서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는 등 연합훈련도 대폭 늘어나는 추세다.
군 전력증강 사업에서도 미국 방산업체가 잇따라 수주할 확률이 높아진 상태다. ‘가까이할수록 닮아간다’는 말처럼 한미 양국군이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는 기조가 강화될 가능성도 높다.
◆대형 무기사업, 미국이 최대 수혜자되나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대폭 강화하던 지난해부터 한국군 대형 무기도입 사업에선 미국 방산업체가 두각을 나타내는 사례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3월 F-35A 20대를 2028년까지 3조7500억원을 들여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도입하는 차기전투기(F-X) 2차 사업을 의결했다.
지난해 말 의결된 F-15K 성능개량(3조4600억원)과 AH-64 공격헬기 성능개량(4000억원)까지 포함하면, 지난 1년여간 미국산 무기 신규 도입 또는 성능개량에 투입할 예산은 10조원에 달한다.
현재 추진중인 전력증강 사업에서도 미국 업체가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3조900억원을 투입해 공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구매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지난 5월 해외구매로 추진하기로 결정됐다.
유력 후보로는 E-7(미국 보잉)과 글로벌아이(스웨덴 사브)가 거론된다.
E-7이라는 이름은 호주에서 운용하는 E-737 조기경보기의 이름이다.
2018년에 공개된 글로벌아이는 서방권 조기경보기 중 최신형이다. 고성능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탐지장비를 장착, 최대 11시간 비행하면서 지상과 해상 및 공중감시가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웨덴이 도입했고, 폴란드도 구매 협상을 진행중이다.
군 안팎에선 항공통제기 2차 사업에서 보잉이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공군에서 이미 E-737을 운용하며 후속군수지원 요소가 이미 갖춰져 있다.
사업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360도 감시 능력의 경우 E-7은 이미 충족하고 있고, 글로벌아이는 360도 감시 능력이 부족해 센서를 추가 장착하는 ‘한국형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센서 추가가 단순한 개량이 아닌, 기체 전체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조기경보기는 다양한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융합, 오퍼레이터가 하나의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센서를 추가하면 정보 수집·융합체계도 그에 맞게 바꿔야 한다. 이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추가한 센서만 담당하는 콘솔을 별도 설치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작전 효율성은 낮아진다.
브라질이 도입했고, 헝가리와 포르투갈이 구매를 결정한 C-390은 아시아 태평양 군수 시장 개척을 위한 교두보로 한국에 주목, 대형수송기 2차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한국 공군과 방위사업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군에서 이미 운용중이고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 널리 쓰여 후속군수지원에 유리한 C-130J가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는 시각이 많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 영업활동을 했던 록히드마틴의 마케팅 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고 전했다.
3조7000억원을 들여 지난 4월 해외도입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결정된 특수작전용대형기동헬기 사업은 후보기종이 CH-47F와 CH-53(록히드마틴)이다. 후보가 모두 미국산이다.
현 정부 임기 안에 또다른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군 내부에서는 F-35A 보유량을 80∼100대까지 늘려야 한다는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기류가 확정적으로 굳어지면, 20∼40대를 추가 구매하는 사업이 현 정부 임기 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상호호환성의 빛과 그늘
미국산 무기 구매가 지속되는 것은 미국산만큼 실전 검증이 끝난 무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나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처럼 미국의 경쟁력이 낮은 ‘틈새시장’에서는 유럽·이스라엘 제품이 강세지만, 그외의 상당수 분야에선 미국산이 선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미국 등에서 제기되는 상호호환성 개념은 이같은 기조를 더욱 강화, 유럽 등의 진출을 가로막는 진입장벽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에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설명할 떄 자주 등장했던 상호운용성이 서로 다른 장비와 조직이 연합작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범위였다면, 상호호환성은 상호운용성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개념이다.
미국산 또는 미국이 구매한 제3국 장비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더욱 밀착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상호호환성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호주다. 영어권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일원이자 미국·영국과의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을 공동 개발하기로 한 호주는 북부에 미군이 주둔중이고, 연합훈련도 활발하다.
F-35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고, 하이마스와 AH-64 공격헬기 등 미국산 무기를 더 구매하고 있다. 미국은 호주가 쓰는 E-7 조기경보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국도 높은 수준의 상호호환성이 적용, 미군과 한국군의 통합을 촉진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주한미군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연합훈련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군과 공군에선 이지스 전투체계부터 F-35A에 이르기까지 미국산 장비가 많다. 특히 공군의 주력 기종은 모두 미국산이다.
우려되는 점도 있다. 대미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유럽 등 우방국에서 만든 무기를 구매할 기회가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독일 주도로 출범한 스카이실드 유럽 방공시스템에 프랑스·이탈리아의 SAMP-T 미사일 방어체계 대신 미국산 패트리엇(PAC-3) 등을 쓰기로 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보낼 국가는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엔군사령부 소속 전력제공국도 있다. 대부분이 유럽국가인 전력제공국은 현재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지 않다.
한국에 머무는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을 돕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까지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파견할 지는 불확실하다. 사전에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기 구매 등의 교류가 필요하다. 수천억원이 넘는 무기를 사들인다는 것은 구매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다. 그만큼 국가간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호환성과 대미 의존도가 강화되면, 전력제공국인 유럽을 대상으로 이같은 의도는 실현되기 어렵다.
우수한 품질을 갖춘 미국산 무기를 도입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안보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잠재적 위험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외교·국방 분야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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