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 [엄형준의 씬세계]
엄형준 2023. 7. 14. 06:04
■‘비밀의 언덕’
교양 없는 가족이 부끄러운
12살 소녀의 성장통 이야기
■‘디어 마이 러브’
다시 시작된 노년의 로맨스
사랑·증오 사이 번민하는 딸
■‘더 썬’
이혼 가정의 부자지간 통해
‘좋은 부모’에 대한 물음 던져
12일 개봉한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교 5학년 치고는 조숙한 ‘명은’(문승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을 그린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었던 유년기가 지나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우리 집과 남의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교양 없는 가족이 부끄러운
12살 소녀의 성장통 이야기
■‘디어 마이 러브’
다시 시작된 노년의 로맨스
사랑·증오 사이 번민하는 딸
■‘더 썬’
이혼 가정의 부자지간 통해
‘좋은 부모’에 대한 물음 던져
가족.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인연이 계속되는, 가장 끈끈하면서도 때로는 ‘나’에게 고민과 번민을 주는 집단이다.
매 순간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하면 좋겠지만, 가족은 때로 끊을 수 없는 족쇄처럼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웬만해선 가족과의 갈등을 드러내길 꺼린다. 영화는 그런 말 못 할 고민을 스크린에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매 순간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하면 좋겠지만, 가족은 때로 끊을 수 없는 족쇄처럼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웬만해선 가족과의 갈등을 드러내길 꺼린다. 영화는 그런 말 못 할 고민을 스크린에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가족 구성원으로서 ‘나’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2일 개봉한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교 5학년 치고는 조숙한 ‘명은’(문승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을 그린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었던 유년기가 지나고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우리 집과 남의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철수네 엄마는 요리도 잘하는데, 서진이네 아빠는 돈 잘 버는 의사라던데, 쟤네 집은 신축 고급 아파트에 산다는데…’ 같은 식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정확히 1996년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이로 38세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다. 그해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던 때로, 다음 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오기 전이기도 하다. 이 평범한 한 해에 벌어지는 사건은 지금은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환경조사 면담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엔 선생님이 학생의 가족 수입은 얼마고, 엄마 아빠는 뭘 하시고, 형제는 몇 명이고, 어디에 살고, 자가인지 전세인지 물었던 때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글재주가 있는 명은은 반찬가게를 하는 억척스러운 엄마나 빈둥대는 아빠, 교양 없는 ‘우리 집’이 부끄럽다. 그 시대의 많은 명은이 느꼈을 감정이다. 그래서 명은은 가족의 실체를 철저히 숨기고, 거짓말은 늘어만 간다.
자아가 형성되며 친구들보다 뛰어난, 잘난 사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때로 가족은 걸림돌처럼 느껴지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그런 가족에 대한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혹은 그것을 숨기는 것 중 어떤 게 더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지 그리고 내 마음에 평안을 줄지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이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성장통을 겪는다”면서 “남모르게 숨겼던 성장통을 언덕이라고 비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개봉한 클라우스 해로 감독의 ‘디어 마이 러브’는 표면적으론 노년의 사랑을 다루지만, 그 내면에는 가족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은퇴한 선장 ‘하워드’(제임스 코스모)는 아내와 사별한 후 아일랜드 시골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옷과 집기는 널브러져 있고, 부엌 싱크대엔 빨랫감이 처박혀 있다. 하워드의 딸 ‘그레이스’(캐서린 워커)는 가사도우미인 ‘애니’(브리드 브레넌)를 고용하고, 하워드는 애니가 못마땅해 처음엔 내쫓으려 하다가 어느새 그녀의 성품에 반해 마음의 문을 연다. 애니 역시 겉은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하워드에 호감을 느낀다.
노년의 사랑은 아일랜드 바닷가의 서정적 풍경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답지만, 그레이스로 인해 두 사람의 평온은 갯바위에 부딪힌 파도처럼 물보라를 내며 깨진다. 그레이스는 뱃사람으로 살며 엄마와 자신을 내팽개친 아빠를 힐난하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레이스는 죄책감과 연민, 증오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댄다.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모든 과오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오는 19일 개봉하는 ‘더 썬’은 전작 ‘더 파더’로 아카데미 2개 부문을 수상한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의 두 번째 가족 이야기다. ‘더 파더’에서 치매를 다룬 젤레르 감독은 이번엔 ‘더 썬’을 통해 자녀의 우울증 문제를 건드렸다.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잘나가는 변호사 ‘피터’(휴 잭맨)는 전처 ‘케이트’(로라 던)로 부터 고교생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가 학교에 가지 않고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피터는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지금의 아내 ‘베스’(버네사 커비)에게 양해를 구하고 니콜라스를 집으로 데려온다. 피터는 좋은 아버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법적인 의미의 가족은 해체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부모와 연결된 아이가 느끼는 고통은 가늠하기 힘들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는 시종 무겁고, 영화를 본 관객은 그 무게를 함께 감당하게 된다.
젤레르 감독은 “‘더 썬’은 죄책감, 가족 간의 유대감,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정신 질환에 관한 담론에 목소리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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