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깡의 수렁]③ 조직화된 범죄에 피해 속출해도… 당국은 “단속 현실적으로 어려워”

김유진 기자 2023. 7.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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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제대출, SNS·오픈채팅 등에서 영업
정부, ‘예방’에만 초점…개인의 선택에 의존
명확하지 않은 주무부처도 대책 마련 걸림돌
일러스트=손민균

내구제대출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정부의 해결책 마련에는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을 중심으로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만 내구제대출을 이용한 피해자가 처벌을 우려해 음지에 숨어버려 단속을 하기가 어렵다. 결국 개인의 예방에만 의존한 대책이 중심이 되고 있다.

내구제대출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도 정확하지 않다.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내구제대출을 다루고 있긴 하나, 특정 부처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보니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실적으로 단속 어려워”

내구제대출은 다른 불법사금융보다 더 단속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불법사금융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구제대출 피해자의 경우에는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서 돈을 받은 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사기 범죄라는 ‘빨간 줄’이 그어질 것을 우려해 다수의 피해자가 신고를 꺼린다. 수사·금융기관은 피해자가 없는 내구제대출에 대해 단속할 수가 없다. 내구제대출 역시 구속률이 매년 1%대에 머무는 불법사금융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자가 나타나더라도 사후 구제는 어렵다. 내구제대출의 무대는 개인 소셜미디어(SNS),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이다. 내구제대출 사기 일당이 영업에 이용하는 통장이나 휴대전화도 이미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인 경우가 많다.

내구제대출은 단속을 강화하면 끊임없이 이름을 바꿔 성행한다는 점도 당국의 단속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10여년 전 휴대폰깡에 대한 문제가 커져서 경·검찰의 단속이 강해지자 휴대폰깡은 본질은 그대로 둔 채 내구제대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구제대출이라는 것이 단속 강도가 세지면 음지로 숨어들었다가 다른 형태와 방법으로 다시 등장한다”라며 “휴대폰깡이 청소년 유해 단어로 지정돼 노출이 어려워지자 내구제대출로 이름만 바꾼 것처럼 단속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청소년 유해 단어로 지정된 내구제대출. /포털사이트 캡처

결국 당국에서는 단속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 내구제대출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포털사이트 검색에서 내구제대출을 청소년 유해 단어로 지정했다. 또, 대출 중개 사이트에서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의 전화번호를 대부업자에게 공개하지 않고, 이용자가 대부업자를 선택해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불법사금융업자가 대출을 원하는 이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법사금융은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려운 만큼 사전 예방이 정말 중요하다”라며 “내구제대출에 대한 광고를 차단하고 내구제대출이 어떤 경로로 발생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스스로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사전 예방의 큰 축이다”라고 했다.

다만, 이런 예방 대책이 모두 개인의 선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개인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구제대출을 이용할 수 있어 근본적으로 내구제대출에 대한 예방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중개 사이트에서 이용자의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도록 했지만, 이용자는 원하는 경우 전화번호를 올릴 수 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내구제대출을 해준다는 대부업체를 찾거나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업체에서 내구제대출을 추천하는 경우도 많다.

일러스트=정다운

내구제대출 피해자를 상담하는 A씨는 “정부 부처 간에도 내구제대출이 불법사금융 영역에 포함되는지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책이 나올 수 없다”라며 “그러다 보니 (피해) 예방을 거의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내구제대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불법사금융에 대한 해결책에 내구제대출이 포함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구제대출만 특화해서 핀셋으로 (대책을) 할 수 없는 구조다”라며 “불법사금융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맞물려 대책이 돌아간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불법사금융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이 내구제대출, 보이스피싱 피해를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주무 부처 없으니 청년층은 홀로 대응

내구제대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부처가 부재하다는 점도 내구제대출이 성행하는 이유로 지적된다. 대법원에서 내구제대출 사기에 대해 대부업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을 적용하며 정부 부처 간 내구제대출에 대한 책임 소재는 더 불분명해졌다. 금감원은 “금전을 일정 기간을 유예해 빌려주고 대신 이자를 갚는 게 ‘대부’의 개념인데 내구제대출은 실물을 주고받았으니 대부업의 개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구제대출은 사실상 대출의 개념이다”라며 일축하는 상황이다. 내구제대출을 단속해야 할 정부 부처가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어 내구제대출은 변종 불법사금융으로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다.

일러스트=허인회

이복현 금윰감독원장 역시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구제대출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양지에서 발생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기관 간에 긴밀하게 협조해서 대응했어야 했는데,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 원장은 “관련 법령상 소관 부처가 어딘지를 따지고 실무자 라인에서 나눠서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은데 제 판단으로는 허브가 될 수 있는 기관이 주인의식을 갖고 부처들과 협력하고 연락해서 책임 있는 자세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현재는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TF 발족 이후 해당 TF에서 내구제대출을 다루고는 있으나, 아직 대책 마련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진 않고 있다.

불법사금융 관련 청년상담센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도 초기에는 소수의 피해자만 있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대대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내구제대출도 같은 문제라고 봐야 한다”라며 “통신기기가 이제는 각종 페이와 연동돼 금융의 기능을 하고 있는 만큼 시각을 전환해 각 부처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대출을 이용했든, 내구제대출을 통해 덤터기를 썼든 모두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이제는 TF를 통해 부처 간에 공동으로 대응해 피해가 안 생기게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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