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포트]집값과 상관관계 높은 가계빚···경기침체땐 주식버블보다 더 큰 충격
증가세로 돌아선 가계부채, 경제 영향은
GDP 대비 105% 넘어 세계최고 수준
은행 대출 중 주택관련 비중 70% 육박
가계빚 증가·집값 급등 함께 나타나면
침체 따른 성장률 하락 가팔라 질수도
자산 많은 고소득층은 레버리지 활용
순자산 늘려나가 빈익빈부익부도 심화
통화정책만으로 금융·물가안정 힘들어
거시 건전성 정책과 조화된 설계 필요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한동안 줄어들던 가계부채가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5조 8953억 원 늘어난 1062조 2534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4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했다.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년 9월(6조 4000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가계대출이 늘어난 데는 주택담보대출이 한 달 새 7조 원가량 불어난 영향이 컸다. 주담대는 3월부터 4개월째 증가세를 나타냈다. 4월 2조 8176억 원, 5월 4조 2478억 원, 5월 6조 9805억 원으로 증가 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달에는 줄곧 줄어들던 전세자금대출까지 1000억 원 증가로 전환되며 가계부채를 키웠다.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난 원인으로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집값 하락세 둔화에 따른 주택 거래 회복, 금융 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 등이 꼽힌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3%다.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웃도는 나라는 우리와 스위스(128.9%)·호주(113.6%)·캐나다(103.2%)뿐이다. 소득 가운데 조세 납부 등을 제외하고 개별 경제주체가 처분 가능한 소득을 의미하는 순가처분소득(Net Disposable Income)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0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우리나라보다 높은 곳은 노르웨이·스위스·네덜란드·덴마크·호주뿐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증가했고 코로나19 이후 더욱 빠르게 확대됐다. 특히 이런 추세는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에서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과 상반된다. 주요 선진국들의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3분기 평균 85.7%로 정점을 기록한 후 줄어 지난해 3분기 70%까지 내려갔다. 국내 가계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70.7%에서 105.3%로 올랐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던 가계부채는 올 들어 금리가 오른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후 주택 거래가 다소 회복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온기를 찾으면서 증가세로 반전했다.
가계부채는 물론 순기능이 있다. 개인이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소득과 부를 효율적으로 배분해 생애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비교적 소득이 낮은 유년기와 노년기에는 부채를 늘리고 소득이 높은 중장년기에는 저축을 늘리는 식으로 효용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적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경제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과다 채무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는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민간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과도하면 가계는 자산 가격 하락, 소득 감소, 금융기관의 신용 공급 축소 등 대내외의 부정적 충격에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 또 가계부채가 많아지는 동시에 자산 가격이 오르면 담보자산 가치가 큰 고소득층일수록 레버리지를 활용해 순자산을 늘릴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해 자산 불평등 정도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급격한 신용 공급 위축 등 부정적인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가계대출이 빠르게 부실화하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최근 국내외의 많은 연구들은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 데이터에서도 실제로 관측됨을 보고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국내 가계부채 수준은 우리 경제의 잠재적 위험 요소다. 물론 가계부채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곳도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발달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중장년기 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높더라도 안정된 노령연금 등으로 노년기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0.4%에 달한다. 이는 한국이 가계부채 문제에서 가장 취약한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잠재적 위험 요소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가계부채와 주택 가격 간의 높은 상관성이다. 2000년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과 주택 가격의 상관계수는 0.76으로 1에 매우 가깝다. 상관계수가 1이면 가계부채 비율과 주택 가격이 완전히 일대일 대응하면서 변화한다는 뜻이며 0이면 서로 완전히 독립돼 있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미국(0.37)이나 일본(0.20)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이렇게 높은 상관성은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서로 긴밀히 연계되는 우리 경제의 특징에서 비롯됐다. 2020년 말 기준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총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62% 정도로 미국(25%)이나 일본(37%)보다 훨씬 높다. 이 같은 특징은 가계대출 구성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즉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말 기준 57%다. 여기에 주택 관련 대출을 보유한 차주의 신용대출을 포함하면 이 비중은 67%까지 상승한다. 전체 은행 대출 중 주택 관련 대출 비중 역시 70%에 육박한다.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가계부채와 주택 가격의 상관성이 높으면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 2017년 계간 경제저널 논문(세계 가계부채와 경기 순환)에 따르면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실증 분석에서 가계부채 증가는 단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긍정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5년 통화경제학저널 논문에 따르면 가계부채 증가가 주택 가격 급등과 함께 나타날 경우 경기 침체에 따른 GDP 성장률 감소 폭이 주식 버블 발생 때보다 2배 이상 크고 지속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장기였다. 고물가·고금리와 동반된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가계부채 및 주택 가격 상승세 전환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은은 물가 안정과 함께 금융 안정이 주요 책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개방된 신흥국에서는 단기 기준금리를 조정해 장기 금리를 제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10년물·30년물 등 장기 금리는 국내 기준금리의 영향도 받지만 미국의 금리 수준에 동조화하는 부분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통화정책만으로는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이라는 양대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렵다. 금융 안정과 관련한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과 조화롭게 설계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즉 금융 당국과 한은의 정책협력(policy coordin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흔히 중앙은행과 관련된 정책 간 협력을 논의할 때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을 걱정하곤 한다. 그러나 정책협력이 필요한데도 하지 않는 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아니라 정책 간 협력이 필요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중앙은행의 진정한 독립성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허준영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과장 및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현재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이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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