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원금 반토막났다” 제도 손질 후 오히려 널뛰는 스팩
상장 당일 200% 넘게 올랐지만 다음날 하락 전환
합병 성공해도 합병가액은 대개 스팩 주가에서 할인돼 결정
한 증권사 지점에서 계약직 트레이더로 일하는 최모씨는 지난 12일 상장한 DB금융스팩11호를 장 초반 6000원에 담았다. 스팩은 서류상 회사로 아무런 실질 가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지만, 앞서 상장한 교보14호스팩이 시초가 2170원에 시작해 상장 이튿날 8190원까지 치솟는 것을 두 눈 뜨고 빤히 바라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스팩의 이상 급등 현상은 한번 시작되면 몇 번은 반복된다는 것을 경험했던 그는 DB금융스팩 주식을 6000원에 대량 매입했다. 하지만 DB스팩은 6860원까지 올랐다가, 이튿날 곧바로 3000원대로 추락했다. 그는 “7000원쯤이면 팔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거품이 너무 빨리 꺼졌다”면서 “하루 만에 원금이 반토막 났다”고 울상지었다.
“한동안 접었던 스팩도 다시 청약해야겠습니다.” 한 온라인 종목토론방에 이같은 글이 올라올 정도로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스팩’이 주목받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상장 당일 최고 가격의 상단을 더 열어준 후 스팩이 수백 퍼센트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스팩은 3년 내 합병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되는 데다가 합병을 하더라도 통상 합병가액은 스팩 주가에서 할인돼 정해지기 때문에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상장한 스팩은 교보14호스팩과 DB금융스팩11호, 총 2개로 이들 스팩의 상장 첫날 상승률은 240.50%, 121.75%였다. 스팩은 다른 법인과의 합병이 유일한 사업 목적이라 영업 활동이 없는 명목상 회사다. 실적에 따른 주가 상승이나 배당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모가와 비교해 수백 퍼센트 상승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상장 당일 공모가의 400%까지 주가가 오를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이 아닌 스팩도 첫날 급등하는 모양새다. 앞서 금융위가 내놓은 기업공개(IPO) 건전성 제고 방안으로 지난달 말부터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은 기존 63~260%에서 60~400%로 변경됐다. 주가 급등 뒤에는 개인 투자자가 있었다. 개인 투자자는 교보14호스팩과 DB금융스팩11호의 상장 첫날 각각 95억원, 189억원어치 사들였다. 반면 기관은 첫날부터 두 스팩을 차례로 92억원, 174억원어치를 털고 나가면서 차익을 챙겼다.
스팩이 이상 급등하는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스팩은 가격 제한 폭까지 상승한 바 있다. 2021년 5월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첫날엔 1.69%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그다음 날부터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같은 해 6월 상장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상장 첫날부터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상장한 삼성스팩6호는 4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상한가라고 해도 30%에 불과하기 때문에 금융위의 제도 개선 이후 상장한 스팩보다 상승률은 낮다.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들어 스팩에 더 몰려드는 이유다.
문제는 스팩의 상장 열기가 길지 않다는 점이다. 이달 상장한 두 스팩은 상장 바로 다음 날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다. 교보14호스팩은 17.91%, DB금융스팩11호는 25.29%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스팩을 저점에 샀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순 없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이내에 합병하지 못하면 해산, 즉 상장 폐지해야 한다. 2021년 기준 스팩의 합병 성공률은 63.9%다. 스팩은 주식 발행을 통해 모은 자금의 90% 이상을 한국증권금융 등에 예치해야 해 일반 상폐와 달리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되는 건 아니다. 투자자는 스팩이 증금에 예치한 금액과 소정의 이자를 더한 금액에서 주권 보유비율에 따라 돌려받는다. 하지만 통상 2000원인 공모가액보다 높은 가격으로 스팩에 투자했다면 해산 시 반환받는 금액은 투자 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
스팩이 다른 법인과 합병해 합병가액이 매입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투자자의 이익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 손실이다. 스팩의 합병가액은 해당 스팩의 일정 기간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최대 30%까지 할증 또는 할인돼 결정된다. 2020년 이후 합병을 완료한 스팩은 대부분 스팩의 주가를 할인해 2000원에서 합병가액이 결정됐다. 2000원 이상에 스팩을 샀을 경우 합병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비상장법인은 본질 가치보다 할증되고 스팩은 할인돼 합병가액이 산정되는 이유는 주로 스폰서에 기인한다. 스폰서란 스팩 설립 시 발기인으로, 주로 증권사가 맡는다. 스폰서는 합병에 성공할 경우 성공 수수료를 받는다. 또 합병 실패 시 손실이 나기 때문에 스폰서는 비상장법인을 공정하게 평가하기보다 합병 성공을 우선할 유인이 있다.
김남종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스팩 상승률은) 해당 주관사에 대한 과거 퍼포먼스를 분석했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상승”이라며 “투자자는 IPO 때는 주관사의 평판과 그동안의 레코드, IPO 후에는 피합병기업에 대한 정보를 보고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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