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일상, 나만 고민하는 게 아니었네! 인스타툰 인기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만화로 그려서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시게 될 줄 몰랐어요. 위안을 주는 이야기, 모두가 내심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나눴더니 팔로어(채널 구독자)가 어느새 2만 명이 넘었네요.”
일상의 소소한 일화들을 만화로 그려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헤빵(필명)씨는 3년 전까지는 자신이 만화가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만화를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구독자만 2만 명.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 작가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헤빵씨는 어엿한 전업 작가다. 디즈니플러스,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 같은 공공기관, 기업의 광고 의뢰도 받았다. 사람들은 왜 인스타그램에서 만화를 볼까? 활발히 활동하는 20, 30대 작가 5명에게 ‘인스타툰’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제작도 감상도 부담 없이…독자와 작가 ‘윈윈’
인스타툰은 인스타그램 게재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만화다. 주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을 이용하는데 사진, 동영상을 터치 몇 번만으로 자신의 계정에 올릴 수 있다. 대개 1화당 10장 안팎으로 일주일에 2, 3회 정도 게재된다. 독자들은 공짜로 보고, 작가는 간편하게 작품을 공개한다. 낮은 진입장벽이 특징이다.
인스타툰 작가가 최근 1, 2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는 게 작가들의 이야기다. 광고 단가 변화로 이를 체감한다. 인스타툰 작가들의 광고를 만화에 포함시켜 수입을 얻는데 작가가 늘어나면서 최근 광고 단가가 떨어지는 추세다.
2018년부터 만화를 그렸고 구독자가 22만 명에 달하는 감자 작가는 “2년 전만 해도 건당 100만 원 정도를 받았다면 지금은 거의 30만 원까지 가격이 떨어진 것 같다고들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인스타툰의 인기 비결이다. 인스타툰 주제는 평범한 일상을 귀여운 그림체로 풀어나가는 ‘일상툰’이 많다. 장편이나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와 달리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야기도 보통 1화로 끝난다. 감자 작가는 “일상툰은 마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만화”라면서 “인스타툰은 인스타그램 보다가 그냥 한 번 슬쩍 눌러서 보는 ‘스낵’ 같은 장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그림 실력보다 공감대 형성이다. 취재에 응한 작가들 모두 자신의 답답한 마음 혹은 즐거웠던 이야기를 일기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리다가 작가로 데뷔한 경우다. 물론 만화가를 꿈꾼 경우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직업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반려묘 ‘허일삼’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허킨치 작가는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을 이용해서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릴 수 있어서 작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작가들에게 인스타툰을 그리고 싶다며 방법을 묻는 독자들도 많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지?’ 궁금한 독자들
일상 이야기는 평범하더라도 독자를 끌어당긴다. 헤빵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힐링 일상툰’으로 정의하고 “집순이를 집에서 꺼내는 방법, 운동이 정말 싫은 사람의 특징 등의 소재들을 다뤄왔다”면서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일을 겪는데 그런 소재들을 밝고 유쾌하게 풀어내니 독자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정 직업의 일상을 소개하는 장르도 인기가 많다. 5년 차 간호사로 수술실에서 겪는 일들을 그리는 빠찌 작가는 “아기 환자들은 간호사들에게 안겨서 수술실로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 사연을 만화로 그렸더니 간호사는 물론이고 간호사를 지망하는 분들까지도 많이 봐주셔서 구독자가 크게 늘었다”고 돌아봤다.
대리만족도 일상툰의 소구요소다. 허킨치 작가는 만화의 마지막 부분에 실생활에서 찍은 일삼이 사진을 첨부하기도 한다. 그는 “저를 팔로우(구독)하시는 독자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키우시거나 아니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데 사정상 키우지 못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작가와 독자가 공감대를 형성해야 만화가 인기를 끈다는 것이 작가들의 설명이다. 인봉 작가는 “남들도 함께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 위로가 되지 않느냐"며 "SNS에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은 많으니까 나는 ‘육아가 힘들다, 혼자 힘든 것 아니다’ 이런 위로를 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상업성’ 피하는 독자들…전업 작가는 어려운 길
궁금한 점은 인스타툰 전업작가로 생활이 가능하느냐는 것. 감자 작가는 “많은 분들이 ‘얼마나 버느냐’고 물어온다”고 웃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은 게시자에게 따로 보수를 지급하진 않는다. 작가의 주요 수입원은 광고나 공동구매 홍보다. 더 나아가면 굿즈(캐릭터 상품) 판매, 전자책 제작도 가능하다. 작가들은 광고 횟수를 매달 2~4회 정도로 제한하는 편이다. 광고 만화인 점을 밝히지만 과하면 독자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탓이다. 업계에는 “많이 벌면 매달 대기업 직장인만큼 벌지만, 적을 때는 0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들은 인스타툰 전업으로 생활해결은 쉽지 않은 길이라고 설명한다. 작가가 늘어난 만큼 상당수는 금세 사라진다는 것이다. 헤빵씨는 “열심히 그려도 당장은 인기와 수익이 없으니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다”면서 “인스타툰은 특정 화가 ‘터져야(SNS에서 많이 보여져야)’ 구독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성공 비결로 분명한 방향성과 함께 꾸준함을 꼽는다. 구독자를 늘리려면 만화의 소재와 성격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꾸준히 만화를 게재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인봉 작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이라면서 “초반엔 자주 올려야 된다. 작품 활동이 뜸하면 저라도 구독을 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빵 작가는 “만화 줄거리는 1초 만에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며칠씩 고민해도 안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일상툰은 신상 노출 우려가 있는 점도 작가들의 걱정거리다. 작가들은 대개 사생활을 보호하려고 실명 등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다. 그러나 구독자가 많아지면 신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가들은 SNS에서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 ‘OO회사 다니지 않느냐’는 식의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작품과 함께 성장 "일단 도전하세요"
그럼에도 작가들은 인스타툰을 그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독자와 소통하면서 스스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빠찌 작가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호사로 취업해 병원 생활만 알았다”면서 “그런데 인스타툰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다른 직업과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인봉 작가는 현재 6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10만 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그는 많은 사람이 육아하는 기쁨을 알고, 또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 킨치 작가는 한때 영화를 공부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만화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앞으로는 일상툰 말고도 창작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전했다. 헤빵 작가는 “모두가 심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그냥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만화를 그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래의 인스타툰 작가에게 작가들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감자 작가는 이렇게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구독자를 얻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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