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도시의 괴담이 아니다, 실제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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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에 갇힌 도시에 도착한 소설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다. 영원히>
도시 괴담이라는 테마로 여덟 작가의 최신작을 모았다.
도시의 현대를 축성하던 1990년대 영화 속 단역을 2020년대 귀신으로 환생시킨 이유는 가령 90년대 원혼이 아직 이 도시에서 해원되지 않았다는 말처럼도 들린다.
작가들이 먼저 듣고 본 도시의 기괴한 실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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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강화길·김멜라·서장원·이원석·이현석·전예진·정지돈·조우리 지음 l 은행나무 l 1만5000원
여름 장마에 갇힌 도시에 도착한 소설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이다. 도시 괴담이라는 테마로 여덟 작가의 최신작을 모았다.
김멜라의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는 도시 지하철에서 생활하는 디지털 귀신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시오는 약자들의 분노는 무조건 일단 믿고 대신 발산하여, 이들을 수호하려 한다. 꽤 원칙주의자다. 1995년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의 단역 ‘시위대5’의 이미지가 혼이기 때문이다. 폭력 남편과 공권력에 맞서 주인공 여성 편에서 함께 시위했던 이름 없는 한 여성. 시오는 남녀차별 같은 구태는 “여농회 남부지부장의 트랙터로 깔아뭉개야 한다” 하고, ‘세상 쭉정이들’ 누구도 제 인생에서 엑스트라일 수 없다며 “쭉정이도 마음 놓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참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그는 ‘몸자보’를 두르고 있다.
시오는 임산부석에 앉은 남자들에게 옴을 날린다. (‘재수 옴 붙었다’의 옴인 듯하다.) 그래 봐야 내릴 역을 지나치거나 소지품을 놓고 내리게 하는 정도지만. (오늘 당신이 그랬다면 되짚어볼 일) 어느 날 임산부석에 앉은 노인에게 옴을 쏘려 하는데, 이를 막는 귀신이 초구다. 약자들이 울 일은 무조건 일단 믿고 대신 울어주는 ‘초상집9’. 촬영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망자를 위해 진심 울었던 영화 <축제>(1996) 단역의 혼. 그는 곧 떠날 이들을 ‘귀신’같이 감지한다. 임산부석 노인이 그랬던 것. 초구를 사랑하는 시오는 고분 물러난다.
디지털 귀신들이 지하철에서 보이지 않게 드러내는 사랑과 분노는 저마다 드러내 보이지 않고 참아 감추려는 약한 인간의 마음을 대신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내린 다음에 타라, 내린 다음에 타라고! 빨리 내려 이 새끼야, 문밖으로 꺼져” 따위 제 감정을 드러내놓고 발산하는 인간을 만난다면, 시오와 초구가 아직 처리 못 한 나쁜 귀신 ‘저퀴’가 득실댄다는 말이니까.
도시의 현대를 축성하던 1990년대 영화 속 단역을 2020년대 귀신으로 환생시킨 이유는 가령 90년대 원혼이 아직 이 도시에서 해원되지 않았다는 말처럼도 들린다. 이 발랄한 은유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다. 지하철이 어떻게 이 도시에 들끓는 육중한 감정들을 견뎌내는지, 그럼에도 왕왕 ‘죽음’에 이르는 사고들은 얼마나 억눌린 ‘분노’의 참다못한 폭발인가 알 만해진다.
어느새 망각했을 법한 코로나 팬데믹의 광기적 국면을 한 의사와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탈북 여성의 생생한 대화로 다시 기억시키는 이현석의 ‘조금 불편한 사람들’, 오랫동안 교회와 집단주의가 질서가 되었던 마을의 불신 가득한 오늘을 조명한 강화길의 ‘꿈속의 여인’ 등도 흥미롭다.
긴 여운은 전예진의 ‘베란다로 들어온’의 몫. 개인적-이유나 형체가 얘기되지 않는-비극을 겪은 젊은 부부가 한때 주목받았던 재개발 반대 투쟁의 후과를 알게 되어간다. 오늘의 고통도 결국엔 지나가리라는, 선의의 결말이 마침내 좋으리라는 믿음은 이 도시가 허락한 믿음이 아니다. 도시인들이 겨우겨우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 소설들은 어느 것도 괴담이 아니다. 작가들이 먼저 듣고 본 도시의 기괴한 실제 상황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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