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 꿈꾼 ‘5월 광주’ 떠올리며 왼손으로 그림 그렸죠”
아들 권유 따라 왼손으로 그림
31일까지 광주 갤러리서 개인전
5·18 광주 기억 세밀하게 담아
광주 5·18시민군 출신 임영희 작가
“엄마 심심하니까 그림 좀 그려봐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아들이 임영희(67) 작가에게 그림을 권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임 작가는 “왼손으로 어떻게 그리겄냐?”고 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색연필과 사인펜, 크레파스를 왼손에 쥐었다. 무엇을 그릴까? “나를 그려보자.” 에이포 용지에 그리다 보니까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10대 때 학창시절의 기억만 떠올려 그렸다. 아들이 “민주화운동과 장애인 생활도 한번 표현해보셔요”라고 격려했다. 임 작가는 “크레파스와 사인펜은 서투른 왼손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내게 즐거움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아들의 권유로 시작한 그림 덕분에 임 작가는 “한 달만 작가”로 살게 됐다. 임 작가의 첫 개인전이 지난 6일 광주 소태동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는 “전시회가 끝나는 31일까지만 작가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양림동 소녀’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그의 전시회엔 그의 80여점이 전시된다. 주홍 갤러리 생각상자 관장은 “여성 5·18 시민군으로 광주 현대사 한복판에서 문화운동을 했던 그가 왼손으로 그린 자전적 에피소드 형식의 그림이 참 재밌고 삶을 돌아보고 꿈을 꾸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양림동은 학창시절 문학소녀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꿈을 꿨던 시기에 살았던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에요.”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임 작가는 “양림동은 그냥 동네가 아니라 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거주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했던 곳”이라고 했다. 광주로 유학을 와 양림동에 있는 수피아여중·고를 다녔던 그는 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했던 ‘문학소녀’였다. 1979년 12월 광주·전남 최초로 여성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송백회’ 창립멤버였던 그는 현대문화연구소 여성부 간사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문화운동가였다.
“5·18 시민군으로서 홍보활동을 하면서 오갔던 곳도, 5·18을 알리는 연극을 만들려고 했던 곳도 양림동”이었다. 그의 그림 〈양림카페 보프룩〉엔 양림동으로 이사를 온 소설가 홍희담(본명 홍희윤) 작가를 만나 보냈던 시간이 스며 있다. 임 작가는 “희윤 언니와 여성·세계사·문화·문학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극단 ‘광대’의 단원으로 활동하다 5·18을 만났던 임 작가의 작품 속엔 5·18 광주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와이더블유씨에이(YWCA) 광주〉엔 1980년 5·18항쟁 당시 진압작전이 시작됐던 새벽의 아픔이 담겨 있다. “여성들은 피해라”는 말에 남성 시민군과 실랑이를 했던 임 작가는 밀쳐져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진압 군인들이 쏘는 총소리를 들었다. 〈도청 분수대에서〉는 5·18 집회 때 고 이윤정씨가 쓴 ‘민주주의’라는 시를 낭독하던 ‘그’의 20대 모습이다. 〈광주 5·18〉, 〈해방 광주〉 등의 작품엔 “오월의 죽음을 목격했던 아픈 기억과 공동체를 경험한 벅찬 환희”를 각각 표현했다.
시선을 붙잡은 작품 중엔 〈고통〉이 있다. 그림 속 ‘그’의 온몸엔 핀 수십 개가 박혀 있다. “5·18 후 서울로 도망(도바리)을 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용호·김선출을 만나 5·18 현장 유인물을 테이프로 녹음해 유포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때 숨어서 작업하면서 난소에 이상이 와 하나를 떼어 냈어요. 그때 생긴 불면증으로 지금도 수면제를 안 먹으면 잠을 못 자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황석영 소설가 집 2층에서 광주 문화운동가들과 함께 녹음했던 기억도 그림으로 부활했다. 당시 이 노래를 불렀던 전남대생 오정묵씨가 훗날 그의 남편이 됐다.
임 작가는 서울로 이주해 살다가 2011년 급성뇌졸중으로 신체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2020년 전남 화순 수만리로 귀촌해 살고 있다. 5·18 시민군과 장애인의 삶 등 간단치 않은 세월을 보냈지만, 양림동의 ‘명랑소녀’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산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표현이 단순·명료하고 색채가 밝고 환한 것이 특징이다. 아들은 지난해 임 작가에게 “엄마, 이 그림으로 영화를 만들면 확실하게 돼요”라고 했다.
카메라를 든 아들 오재형(38) 감독과 자신의 삶을 그림과 구술로 표현한 엄마 임 작가가 함께 30분 분량의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을 창작했다. 엄마의 그림은 아들의 피아노 연주가 입혀지며 세상을 향해 날아갔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제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탔다. “젊은 사람들이 영화와 그림을 보고 공감하며 이야기할 때 제일 기뻐요. 영화와 그림을 보고 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느꼈어요.”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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