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혹세무민 [책&생각]

한겨레 2023. 7.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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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12월의 일이다.

평안도 관찰사 김신원은 신천군수(信川郡守) 조존세가 올린 문서에 근거해 선조에게 희한한 사건 하나를 보고했다.

조존세는 신천군 경내에 사는 사람 산비(山非)의 집에 괴이한 사람들이 나타나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잡아다 구금한다.

그런데 더 멍청했던 것은, 평안도 감사와 신천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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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게가 있는 수조물을 떠 마시고 있다. <한국방송>(K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1604년 12월의 일이다. 평안도 관찰사 김신원은 신천군수(信川郡守) 조존세가 올린 문서에 근거해 선조에게 희한한 사건 하나를 보고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조존세는 신천군 경내에 사는 사람 산비(山非)의 집에 괴이한 사람들이 나타나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잡아다 구금한다. 산비와 남편 김형복은 자진 출두해서 그 괴이한 사람인 강가희와 향태 부부에 대해 털어놓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가희와 향태는 1603년 10월 산비의 집을 찾아와 하룻밤을 묵은 뒤 자신들의 세 아들을 위해 집을 청소하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부부는 자신의 아들 셋으로 말하자면, 예사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기이한 남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아들 셋은 이내 나타났는데, 장남은 수염이 한 자, 차남은 수염이 5촌, 삼남은 수염이 4촌이었고, 모두 얼굴이 넓고 기골이 장대하였다. 검은 관과 누런 관을 썼는데, 무언가 꾸민 것이 엄숙하였다. 산비는 이들을 대접했다. 이자들은 당연히 여느 사람처럼 밥상을 받았고 구운 꿩고기와 닭고기를 열심히 먹었다. 다만 말소리는 가늘기 짝이 없어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달랐던 것은 출생 과정이었다. 어머니 향태에 의하면, 첫째는 보통 사람처럼 음문(陰門)을 통해 낳았으나, 둘째와 셋째는 옆구리 아래로 낳았다는 것이었다. 또 이들은 모두 1603년에 태어났는데 채 1년도 되지 않아 장대한 성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태어난 것이 신이해서 그랬는지 향태는 세 아들을 성선(聖仙)ㆍ신인(神人)ㆍ생불(生佛)이라 불렀다. 이들은 다음 날 새벽 홀연 사라졌는데, 집을 나서는 모습만 희미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향태는 원래 살던 구성으로 돌아가 넷째 아들을 낳아 산비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이 산비와 김형복의 말이다.

조존세는 이어 향태의 남편 강가희를 문초했다. 강가희는 선사포(宣沙浦) 사람으로 양녀 향태와 결혼했는데, 결혼한 지 11개월이 지난 4월에 음문으로, 둘째와 셋째를 6월과 8월에 왼쪽 갈빗대 아래로 출산했으나 현재 이들 셋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향태와 강가희의 말이 사실일 리 없다. 아들들의 출생 과정이 범인과 달랐다고 하거나, 이들을 성선ㆍ신인ㆍ생불이라 불렀다는 것은 이들 부부가 종교성을 띤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부부는 자기 자식들을 신성(神性)으로 포장하고 무언가 사기극을 벌이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사기극의 주체는 아내인 향태였을 것이다. 강가희는 향태가 넷째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약간 멍청했던 것 같다. 그런데 더 멍청했던 것은, 평안도 감사와 신천군수다. 이 따위 황당한 이야기는 조사해 조정에 보고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만약 불법 행위를 한 것이 포착되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인 것을 장황하게 보고서를 써서 왕에게 올렸던 것이니, 글줄이나 읽은 멀쩡한 자들도 멍청하기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1604년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불과 6년이 지난 뒤였다. 세상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난세에는 원래 세상을 속이고자 하는 가짜 도사와 부처, 예수가 날뛰는 법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바닷물이라도 한 통 마시면 알 수 있으려나.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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