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연결과 분열이 겨룬다…다리 위에서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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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물이나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잇는 구조물이다.
나무줄기를 걸쳐 놓거나 돌덩이 몇 개를 던져 놓은 원시적 형태에서부터 몇백 미터 높이에 수 킬로미터 길이를 지닌 초대형 교량까지, 다리는 형식과 기능을 달리해 가며 인간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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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의 다리가 분열을 낳는 역설
인문학으로 본 다리의 모든 것
지적인 쾌감과 재미 쏠쏠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사람과 예술, 문화의 연결고리 다리에 관하여
토머스 해리슨 지음, 임상훈 옮김 l 예문아카이브 l 1만8000원
다리는 물이나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잇는 구조물이다. 나무줄기를 걸쳐 놓거나 돌덩이 몇 개를 던져 놓은 원시적 형태에서부터 몇백 미터 높이에 수 킬로미터 길이를 지닌 초대형 교량까지, 다리는 형식과 기능을 달리해 가며 인간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아 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토머스 해리슨이 쓴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는 다리에 투영된 신화와 역사, 문학 및 예술 작품을 살펴보며 인문적 사유를 펼치는 책이다. 다리의 의미와 상징, 현실과 허구 속 다리를 둘러싸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지적인 쾌감과 재미를 아울러 선사한다.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보스니아 출신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이슬람 현자 알리호자는 다리가 천사의 날개에서 유래되었다는 우화를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세상은 평평하고 부드러웠는데 이를 시샘한 악마가 손톱으로 땅의 표면에 깊은 상처를 냈다. 강과 계곡으로 나뉘어 왕래를 못하게 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하느님이 천사로 하여금 날개를 펼쳐 다리 역할을 하게 한 것이 다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 시인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다리는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오만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다리는 천사와 악마가 힘겨루기를 하는 대상으로 출발한 셈이다.
다리가 지닌 이런 양면성은 삶과 죽음, 타락과 구원, 경계와 초월 식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연결과 단절이라는 핵심 모순으로 나아간다. 집이 없는 이들이나 매춘부들에게 다리는 휴식과 영업의 장소가 된다. ‘다리 밑에서’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관용구는 불법 성매매와 홈리스를 함께 가리킨다. 파리에서는 포주와 소매치기를 다리 이름에 빗대어 ‘퐁네프의 공직자’라 부르곤 했다. 이렇듯 다리에 기댄 이들의 삶을 ‘다리-삶’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마의 산탄젤로 다리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이 묻힐 영묘로 이어지도록 건설해 서기 139년에 완공했다. 티베르강을 건너 영묘에 이르는 다리는 스틱스강의 나룻배인 셈이다. 장편 <소송>과 단편 ‘선고’, ‘다리’ 등 카프카의 여러 소설에서 다리는 죽음의 무대로 등장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다리는 투신자살 장소로 악명이 높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묶인 밧줄, 심연 위에 걸쳐 놓은 밧줄이다. (…)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지가 아니라 다리라는 점에 있다. 인간의 사랑스러움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추락하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인간을 다리에 견준다. 동물을 벗어나 초인에 이르고자 하는 고투가 곧 인간의 삶이라는 뜻이다. ‘다리-삶’과 ‘다리-인간’ 말고도 책에는 ‘다리-도시’, ‘다리-사건’, ‘다리-사유’ 같은 개념들이 제시되고, 메타포로 대표되는 ‘언어의 다리’, 현악기의 줄받침을 가리키는 ‘브리지’ 등 다리의 다양한 응용도 등장한다. 연결과 교류를 목적으로 건설된 다리가 오히려 분열과 단절로 귀결되는 것은 다리의 아픈 역설이다.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를 이어 “부다페스트를 더 포용성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건설했으나 오히려 호전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은 세체니 다리, 보스니아 내전의 무대가 된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 다리 등이 그 역설의 증인들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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