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日 원자력 폐기물 방출, 새 국제규범 마련돼야/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례 없는 일… 새 규범 마련될 중대 계기
피해국 입장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지난 4일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조치와 관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가 제출·공개됐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의 방류 조치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IAEA는 방류가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결정한 방침이며, 보고서는 이 방침을 추천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IAEA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처리 계획에 대한 과학・기술적 검토 내용에 대해 오염수 처리가 계획대로 지켜진다면 배출 기준과 목표치에 적합하며 IAEA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종합 평가와 함께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라 가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한국으로서는 매우 소극적인 대응이다. 방류 자체가 30년 이상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고 가장 중요한 해양 생태계 및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미흡한 상황에서 우리의 당연한 주권적 권리가 보다 구체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많은 논쟁이 해소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IAEA 최종 보고서는 국제기구가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공신력으로 인해 방류된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과학적 안전을 입증할 우월한 증거로 기능할 것이다. 해당 보고서에 대한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긍정적인 반응도 함께 평가될 것이다. 결국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IAEA가 제출한 보고서를 반박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 증거 수집 및 분석에는 국가 차원의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재정이 소요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정권을 뛰어넘는 장기적이고도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오염수 방류로 인해 해양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대한 피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잠복 기간이 지난 후의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수의 대량·장기 해양 방출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한 대비를 불안감 조성이라는 굴레로 속박할 일만은 결코 아니다. 방사능 오염수를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방류하지 않은 것보다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불안해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국민이 있다면 이들의 입장이 가해국인 일본에 전략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방류 결정 및 실행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국제법이 논의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조치와 관련한 일본의 국제법 위반 여부가 쟁점이다. 그러나 국제법 의무 이행의 기준은 본질적으로 최저 기준으로 설정돼 있어 오염수 방류 조치와 관련한 일본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실체적인 의무 위반 차원에서 다투기는 쉽지 않다. 소송을 진행할 경우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방류 자체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 패소하는 경우에는 일본의 방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법의 영역 밖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따라서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좋지 않은 선례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곧 공개될 예정인 넷플릭스의 후쿠시마 원전 드라마 ‘더 데이스’에서는 해당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전례가 없다”는 언급이 자주 반복된다. 일본에 국제법 위반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원전 사고 후 원자력 폐기물의 해양 폐기와 관련한 명확한 국제규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전례가 없는 사안에 대한 국제법 규범 형성을 선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피해국의 입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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