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제주 콩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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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역사적 상처가 깊은 곳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각각 이탈리아반도와 한반도의 끝에 있는 섬인 시칠리아와 제주는 문자로 역사가 기록된 이후 오래도록 수탈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감귤이 한반도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곳도 제주다.
나는 제주의 특별한 먹거리 가운데 인상적인 음식의 하나로 콩잎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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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역사적 상처가 깊은 곳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시칠리아가 그렇고 제주가 그렇다. 각각 이탈리아반도와 한반도의 끝에 있는 섬인 시칠리아와 제주는 문자로 역사가 기록된 이후 오래도록 수탈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두곳 모두 푸른 바다와 독특한 문화 덕에 관광객이 늘 몰린다. 맛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시칠리아는 아몬드·오렌지의 고장이다. 중국의 감귤이 한반도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곳도 제주다. 두 지역 모두 특별한 먹거리가 있다.
나는 제주의 특별한 먹거리 가운데 인상적인 음식의 하나로 콩잎을 꼽는다. 콩잎을 소박하게 된장에 절인 장아찌도 좋지만 생콩잎도 맛나다. 콩잎을 그냥 상추처럼 쌈으로 싸 먹는 콩잎쌈은 육지에서 본 적이 없었다. 깔깔하지만 고소한 게 별미다.
수탈의 땅인 제주는 해방 이후까지 아주 가난했다. 농사짓기도 어렵고 육지와 멀어 생필품도 귀했다. 넉넉하지 않은 것은 쌀만이 아니었다. 고춧가루도 귀했다. 고추농사가 잘되지 않는 데다 뭍에서 먼 제주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았다. 된장이 고추장을 대신했다. 요즘 제철인 제주 물회가 고추장 대신 된장 기반인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래서 콩을 많이 재배했고 콩잎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콩은 뿌리혹박테리아 덕에 크게 손이 가지 않는 데다 지력을 향상시켜줘 예전 농가에서 많이 키웠다. 요즘 제철인 호랑이콩은 밥을 지을 때 넣으면 별미여서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콩이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콩잎을 구하기 쉽지 않다. 깻잎이라는 경쟁력 있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콩 등 국산 콩 가격도 만만치 않다. 수입 콩이 넘쳐나는 탓이다. 시장에 가보면 우리 콩값은 수입 콩의 네다섯배가 넘는다. 그래서 국산 콩 대신 요즘 트렌드라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같은 수입 콩을 더 자주 사게 된다.
콩은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다. 우리나라가 된장과 간장 그리고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이 발달한 건 원산지의 후광 덕도 있다. 하지만 ‘콩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콩 자급률은 20%대에 불과하다. 거대 영농기업이 키우는 수입 콩은 당연히 가격이 훨씬 싸다. 농부들이 자기 식구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상업용으로 콩을 키우기 어려운 가격 구조다.
이탈리아에서는 발효식품인 치즈를 조상 대대로 먹던 방식으로 빚기 위해 소가 먹는 사료를 건초로 제한한다. 사료를 과거와 달리 콩이나 옥수수로 바꿀 경우, 우유의 미생물이 바뀌면서 대대로 만들어오던 치즈의 전통이 깨진다는 과학적인 근거에서다. 그렇게 만든 원산지보호인증(DOC) 치즈는 와인을 제외하고는 농산품 수출 1위에 오를 정도로 이탈리아를 대표한다.
음식은 문화의 뿌리다. 이탈리아를 비롯, 유럽 각국이 자국 음식문화 보호에 진심인 이유다. 우리 된장과 간장에도 이탈리아 치즈처럼 깐깐한 기준의 원산지 인증 제도를 도입해보면 어떨까? 외국산 콩으로 만든 된장·간장이 국산 콩의 그것보다 흔한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전국적으로 하기 어렵다면 독특한 역사를 가진 제주 된장부터 해보면 어떨까? 제주 아름다움의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실험이 아닐까 싶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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