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비상임 예술단원들, 무대선 화려한 예술가… 현실은 생계 막막 ‘N잡러’ [심층취재]
“지역민 문화예술 기회확대 위해 열악한 처우개선 악순환 없애야”
“겉으로는 근사한 예술가처럼 보여도,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한 채 생계 걱정에 사로잡혀 ‘투잡, 쓰리잡’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19년째 의정부시립합창단의 창단 멤버이자 베이스 파트로 활동 중인 이동영씨(49)는 최근 성악 연습보다 초단시간 근로를 개선해달라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더 많아졌다. 월 10일 출근, 주 15시간 이내 근무, 월 92만원의 급여를 받는 초단시간 근로자로 퇴직금은 물론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불안한 삶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씨는 “‘시를 대표하는 예술단원’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버텨왔지만 현저히 적은 근로 시간, 최소한의 연습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과연 지역의 공공예술단으로 지속과 성장, 발전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높이고자 설립된 도내 시립예술단 곳곳에서 근로 시간 확보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상임 단원을 고용하는 형태가 만연한 현 시스템으로는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공공성 확보와 예술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자체 소속으로 운영되는 시립예술단은 상임 혹은 비상임 형태로 근무한다. 상임 단원은 통상 주 5일 출근, 20시간 이상(최소 15시간)의 근무, 비상임 단원과 비교해 높은 급여와 퇴직금, 보험 등이 보장된다. 도내 상당수 비상임 단원은 근로시간이 주 15시간을 넘기지 못하는데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근무가 확보돼야 주휴수당과 퇴직금·연차 유급휴가·4대 보험, 기간제법(2년 초과 근로한 경우 정규직 전환) 등을 적용 받는다.
문제는 도내 지자체에 설립된 시립예술단의 비상임화가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도내 23곳에 설립된 시립예술단 중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보장받는 상임단원으로 구성된 곳은 수원, 성남, 고양, 광명, 안산, 부천, 시흥, 안양, 파주 등 9곳에 불과하다.
구리, 김포, 남양주, 동두천, 양주, 의왕, 의정부, 하남 등 8개 시 소속 예술단은 지휘자와 예술감독마저 모두 비상임 형태이고, 과천, 광주, 군포, 안성, 용인, 포천 등 6개 시 소속 예술단은 상임과 비상임이 혼재됐다.
지역 예술단에서는 비상임 단원의 비중이 높으면 저임금 구조가 지속되고 근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양질의 문화 공연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예술단을 위한 고민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도내 시립예술단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3분의 2가량의 국공립예술단이 상임화 체계를 갖추는 등 근로 환경이 잘 정비돼 있지만, 경기도는 상당수 지자체에서 열악한 근로 및 복지 문제가 오랜 기간 고착화되고 있다”며 “시립예술단들이 공공 문화 복지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앞다퉈 설립하면 뭐하나… 경기도내 시립예술단 지원 ‘쥐꼬리’
경기도내 지자체가 앞다퉈 시립예술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지만 문화의 사회적 공공성과 예술단의 지속 가능성, 성장을 위한 고민과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마다 조례를 제정해 지역 예술단을 운영하면서도 최소한의 비용을 책정해 비상임 단원의 비율을 높이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형태가 만연하다.
13일 각 지자체가 편성한 올해 예술단 운영 예산을 보면, 23개 지자체 중 과반인 12곳이 문화예술과 등 소속 과 본예산의 10%를 넘지 않는다. 김포시 3억2천550만원(1.3%), 동두천시 4억8천630만원(4.7%), 양주시 11억1천977만원(6.2%), 의정부시 14억7천978만6천원(8.2%), 구리시 7억555만2천원(9.1%) 등 대부분 전원 비상임 단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비교적 저조한 예술단 운영비는 단원 비상임화와 저임금 구조뿐 아니라 예술단원들의 근로 환경 및 복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리시립예술단은 세 개의 합창단이 하나의 연습실을 사용 중이다. 소년소녀합창단·청소년교향악단과 활동 취지 및 성격이 현저히 다른 성인 합창단원들은 연습 때마다 학생들과 장소를 함께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주시립예술단 상황도 마찬가지다. 김민정 공공운수노조 양주시립예술단지회장은 “주 근로 15시간을 채우고 싶지만, 연습실 하나를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출근일수 자체를 늘리기 힘들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남양주시립합창단은 현재 소년소녀합창단과 요일을 나눠 호평체육문화센터의 소리홀을 전용 연습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합창단 연습실이지만 창문이 없어 환기가 안되고 정기공연 이 외에 오페라, 뮤지컬 등의 장르를 연습할 때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시청의 빈 공간 등 연습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큰 여성 단원들은 관련 복지 제도를 사용하거나 누리기 어렵다.
도내 A 지자체의 여성시립합창단은 단원들이 3개월 치 출산 휴가만 쓰는 게 일상화 돼 있다. 육아휴직이 가능하지만, 초단시간 근로자인 탓에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립예술단의 설립과 운영이 활발히 이뤄지는 시점인 만큼 지자체에서 공공 예술에 대한 필요성과 지속성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형진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교수는 “단순히 시민들이 좋아할 콘텐츠를 만들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개념이 아니라 시민들과 예술단이 같이 성장하도록 하는 게 지역 예술단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며 “지자체에서 관행처럼 이어왔던 보수적인 운영 방식을 점검해서 예술인들이 시민과 더 깊게 호흡하고 마음껏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 및 진지한 고민들이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진각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 재정 여건에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 영역의 기업체나 개인의 후원 등 다른 방식을 더해 예술단 운영의 재정 안정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고려해볼 사안”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예술단이 시민들과 함께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등 공공 문화복지 차원에서 존재감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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