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애들이 제일 좋아한다‘곰’

지유리 2023. 7.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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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핫플] (22)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인간 사랑한 곰의 슬픈 전설 어린 곳
국내외 작가 야외미술품으로 재탄생
만지거나 타고 놀 수 있어 즐거움 배가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도 볼거리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대표 조형물인 고요한 작가의 ‘솔곰’. 내부에 전망대가 있어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공주=현진 기자

충남 공주시 웅진동 금강변 나루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내용은 이렇다. 천년 전 강나루 맞은편 연미산 큰 굴에 외로운 암컷 곰 한마리가 살았다. 어느 날 곰은 지나가는 나무꾼을 보고 반했고 그를 잡아다 굴에 가뒀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둘은 정을 통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곰은 이쯤 되면 진정한 가족이 됐으리라 마음을 놓았을 터. 더이상 나무꾼을 굴에 가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곰이 사냥하러 간 사이 굴을 빠져나온 나무꾼은 아이들을 남겨두고 나루터로 가 배를 타고 도망갔다. 곰은 떠나가는 배를 보며 울부짖었다. 이후 이곳 사람들은 곰의 슬픔이 깃든 강가를 고마나루(곰나루)라고 부른다. 고마나루는 공주시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오늘날 연미산에선 곰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색다르게 변주돼 이어져온다. 2006년 문을 연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덕분이다. 연미산 솔숲에 조성된 4만9586㎡(1만5000평) 규모의 야외 미술공원에 고마나루 전설을 모티브로 삼은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미술 작품이 설치돼 있다. 긴 세월을 뛰어넘어 재탄생한 설화 속엔 슬픔 대신 자연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반가움이 가득하다. 나무꾼이 자식마저 버려두고 떠나고 싶어 했던 연미산은,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연간 방문객이 5만명에 이른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공주에서 활동하는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가 관리한다. 이들은 1981년 ‘자연미술’을 주제로 뭉쳐 활동하다가 2004년 나루터에서 첫 전시를 개최했고 이후 연미산으로 자리를 옮겨 2년마다 비엔날레를 열고 있다. 현재 이곳엔 그동안 전시를 통해 선보인 작품 100여점이 곳곳에 자리한다.

5일 수요일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 방문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우거진 숲으로 난 나무계단을 걷는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솔향이 짙다. 인적이 드문 평일 오전, 숲의 적막함을 느끼며 몇발짝 걸었을까. 멀리서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궁금증이 일어 소리를 쫓아 잰걸음을 걷는다. 순식간에 평범했던 숲이 금세 동화의 한 장면으로 바뀐다. 고개를 하늘 높이 쳐들어야 겨우 눈에 담기는 거대한 곰 주변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풍경이 펼쳐진다. 소인국에 당도한 걸리버처럼 몸집이 커진 곰은 무섭기보단 귀여운 인상이다. 소나무로 만든 높이 10m짜리 조각상 ‘솔곰’은 우리나라 고요한 작가가 만든 작품이자 이곳의 트레이드마크다. ‘전설 속 곰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솔곰 내부는 3층 높이 전망대다. 놀러 온 아이들은 내부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멈출 새가 없고 어른들은 밖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기념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관람객의 발소리가 마치 재잘거리는 말소리처럼 들린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곰은 결코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 곰이 아니었을 것이다.

헝가리 출신 처버 여커브 작가가 만든 대나무 셸터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모습.

2023년 솔숲에 사는 곰은 ‘솔곰’뿐이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에마누엘라 카마치 작가는 금강에 빠진 곰이 뭍으로 나와 새 삶을 살아가리라는 희망을 담아 ‘곰이 물이 되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망부석이 돼 나무꾼을 기다리는 곰을 형상화한 남정근 작가의 ‘여전히 그곳에’, 금강 변에서 주운 돌로 곰 형상을 만든 헝가리 로버디 킨거 작가의 ‘사이를 채우다’도 모두 고마나루 전설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옛이야기가 세월을 거슬러 지금 살아나 또 다른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미술은 자연·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예술이다. 그러다보니 동물과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곰이 대다수다. 비엔날레를 열 때 작가를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공주 연미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린다. 자연히 고마나루 설화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고승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은 “아름답고 슬픈 고마나루 이야기가 작가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며 “지역색이 담긴 작품들이라 더욱 연미산자연미술공원과 어울린다”고 말했다.

숲을 이리저리 헤매듯 돌아다니며 미술을 감상한 지 벌써 1시간쯤 흘렀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콧속 가득 나무·흙 냄새가 들어와 머리가 상쾌하다. 도시에서 미술관에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동안 ‘미술관’ 하면 단정히 차려입고 난해한 그림 앞에 서서 의미를 찾느라 갸웃할 때가 많았다. 낯설고 엄숙한 분위기에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네기도 쭈뼛거리게 된다. 여기서만큼은 아는 체하지 않아도 괜찮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놀이터에 더 가까우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기면 그뿐이다. 야외에만 70점 넘는 작품이 있는데 대부분 마음껏 만지고 타고 놀 수 있다.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다. 어린아이가 봐도 한눈에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라서다. 곰과 말, 활짝 핀 나리에 둘러싸인 벌통, 코와 귀가 깨진 고흐의 얼굴까지. 보이는 대로 느끼다 보면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몸과 마음이 명랑해진다.

금강비엔날레는 2004년 시작해 2년마다 열리며 이어져왔다. 지난해 ‘또다시 야생’이란 주제로 펼쳐졌고 올해는 쉬어가는 해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철마다 풍경을 바꾸는 숲 덕분에 작품도 해마다 새로워진다. 입구 쪽에 자리한 실내전시장인 ‘금강자연미술센터’에서도 전시가 열린다. ‘자연미술 큐브전’이란 제목으로 38개국 작가의 200여점이 전시 중이다. 회화·영상·설치작품 등 다양한 장르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을 감상할 때 주의사항은 전혀 없다. 다만 기억해야 할 점은 내부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 환경을 위해서니 감수하자. 작품은 마음껏 체험하되 숲이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고매한 미술을 감상하며 예술 감각을 쌓아볼까 했던 여행은 어느새 미지의 세계를 방문한 모험으로 끝이 났다. 한여름 낮의 꿈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한껏 뛰고 신기해했다. 잃어버렸던 동심 한 조각을 되찾아준 추억 하나가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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