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커 쉐리 "유학 생활에도 정체성은 한국인…'국뽕'도 있어"[일문일답]
"유학 두렵지 않았다…친구들과 의지"
"미국식 포옹 처음 받고 '썸인가' 당황"
"정신적 기반은 한국…K팝 전도사였다"
"한 달에 10만 팔로워…부모님도 인정"
"디제잉·연기 등 배워…휴식은 사후에"
【서울=뉴시스】강운지 리포터 = "물 만난 고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직업이라면 평생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틱톡을 비롯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숏폼 콘텐츠로 활약하고 있는 쉐리(23·본명 임채연)의 말이다. 쉐리는 '10년 차 미국 유학생'이라는 사실 기반 콘셉트 아래 각종 챌린지, 뷰티·패션, 코미디, 교육, 일상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아우르는 크리에이터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될 때 취미로 틱톡을 시작해 '빵' 터진 케이스다. 뉴시스는 지난 4일 그를 직접 만나 크리에이터의 삶에 대해 물었다.
가장 재밌었던 챌린지로는 지난 5월 올린 '아디아디 챌린지'를 꼽았다. 쉐리가 뉴욕 타임스퀘어, 월스트리트 황소상, 자유의 여신상 등을 배경으로 음악에 맞춰 율동하는 영상이다. 그는 "내가 춤을 못 춰서 '배경이라도 화려하게 가보자' 싶었다"면서 "'공공장소에서 왜 민폐냐'며 욕을 많이 먹었다"고 고백했다.
많은 사람에게 유학 생활은 낯설고 힘든 기억이지만, 쉐리에게는 아니었다. 대구국제학교 7학년 재학 당시 미국으로 떠난 그는 "어느 날 어머니께서 '더 큰 무대에서 놀아볼 생각 없냐'고 물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좋다'고 했다"면서 "원래 집 떠나 사는 걸 좋아한다. 두렵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문화 차이를 실감했던 경험은 있었다. 그는 "(미국에 가니) 다들 '하이' 하면서 포옹해 주는데 너무 부담스러웠다. '여기 애들은 다 썸 타나'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런 생각도 했다"면서 "그런데 하다 보니 환영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더라. 그때부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포옹하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줄곧 미국에서 나왔지만 '정체성과 심리적 기반은 완전히 한국 쪽'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심지어 국뽕도 있다. 외국에서 '케이팝 전도사'이고, 한국 메이크업도 많이 소개한다"라며 웃었다.
크리에이터 활동을 처음부터 응원받은 건 아니다. 쉐리는 "사실 반대가 심했다"면서 "처음에는 부모님이 '유학을 그렇게 했는데 꼭 (크리에이터를)해야겠냐'고 하시더라"라고 회상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팔로워 10만명을 모으면 인정해 주겠다'고 선언했고, 쉐리는 실제로 한 달 만에 이를 달성했다고.
취미를 커리어로 변환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호기심'과 '추진력'이다. 쉐리는 "시간이 남는 걸 못 견뎌서 항상 일을 만드는 편"이라면서 "그동안 디제잉 레슨도 세 달 정도 받고, 노래와 연기도 배웠다. 늘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취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다 보면 일과 휴식의 경계가 많이 무너진다. 그래도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사후 세계에서 쉬려 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쉐리와의 일문일답.
"2019년 여름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다가 틱톡을 시작하게 됐다."
-콘텐츠 방향을 '영어'와 '미국 문화'로 잡게 된 계기는 뭔가.
"사실 처음부터 영어 관련 크리에이터가 되려는 목적은 없었다. 원래 틱톡 트랜드를 따라 하는 편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댄스는 좀 아닌 것 같더라. 당시 유튜버 산범님의 '일진 랩'이 유행했다.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직접 랩까지 해 봤는데, 그게 내 첫 100만 뷰 틱톡 영상이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영어로 욕해 달라' '영어로 이건 어떻게 말하냐' 등의 댓글을 달았고, 이를 회신하는 형식으로 영상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 콘텐츠가 됐다. 교과서나 학습지에서 배울 법한 영어보다는 '찐' 미국 MZ세대가 쓰는 욕이라든지, 19금 영어 표현이라든지…조금 더 재미있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그런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챌린지에 굉장히 많이 참여했다. 무엇이 가장 재미있었나.
"'아디아디 챌린지'라고, 미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춤추며 찍은 영상이 있다. 내가 춤을 못 춰서 '배경이라도 화려하게 가보자' 싶었다. 또 콘셉트가 미국 유학생이다 보니 뉴욕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공장소에서 왜 민폐냐고 욕을 먹긴 했다."
-크리에이터 일이 성향에는 잘 맞나.
"물 만난 고기가 된 것 같다. 사실 경영 전공이지만 항상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6년 전에는 첫 유튜브 페이지를 만들어서 랩 커버 영상을 올렸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아버지를 졸라서 카메라를 산 후 브이로그를 찍기도 했다. 그렇게 숨겨진 욕망을 꾹꾹 누르다가 마침내 틱톡이라는 매체를 찾았다. 내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툴을 찾은 거다. 지금은 '이런 직업이라면 평생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과거 대구국제학교에 재학하다가 미국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영어를 강조하셨다. 영어 어린이집,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등 평생 영어를 달고 살았다. 2010년도에 대구국제학교가 생겼는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첫 입학생으로 들어가서 7학년까지 다녔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좀 더 큰 무대에서 놀아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난 독립심도 있고 집 떠나 사는 걸 되게 좋아해서, 별생각 없이 좋다고 했다."
-미국 적응이 수월했을 것 같다.
"맞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1년 정도 해서, 사실 두려웠던 건 없었다. 그리고 미국 기숙사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한국인 유학생들도 다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오히려 서로 의지하고 으쌰으쌰 했다. 약간의 문화 차이나 한국에서 배우지 못한 영어 표현들 외에는 낯설지 않았다."
-가장 와 닿았던 문화 차이는 무엇이었나.
"충격받았던 경험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인사로 포옹하지는 않지 않나. 그런데 (미국에 가니) 다들 '하이' 하면서 안아주는데 너무 부담스러운 거다. 썸이 있는 사이도 아닌데… '여기 애들은 다 썸 타나'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포옹을 받다 보니 기분이 좋더라. 더 환영받는 느낌도 있고. 그때부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포옹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한국 들어와서도 계속했나.
"아니다. TPO가 확실한 편이다."
-운동 동아리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학교 팀에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또 충격받았던 게,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 운동까지 선수급으로 잘해버리더라. 내가 붙을 만한 레벨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실을 자각하고 1군·2군 중 2군으로 빠졌다."
-미국 사람들은 운동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고 들었다.
"맞다. 그냥 기본이고 필수다. 방과 후엔 다들 각자 하는 스포츠로 흩어져서 운동하고, 그다음에 방과 후 활동까지 한다. 우리 고등학교도 자율 학습이라거나 그런 거 딱히 없고 학교 끝나면 무조건 2~3시간씩 운동 갔다가 또 1~2시간씩 방과 후 활동까지 하고, 한 10시쯤 기숙사 돌아와서 숙제를 한 후 그다음 날 8시까지 등교했다."
-미국에서 재학했던 학교가 매우 명문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미국 기숙사 학교 중 전체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선배라고 하면 메타(구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있다."
-그런 학교는 분위기가 어떤가.
"전 세계의 미친 수재들을 다 모아 놓은 느낌이다. 나도 나름 성적이 좋았으니 그 학교에 갔던 건데…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지 않나. 거기엔 죄다 나는 놈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실 자존감도 많이 무너졌었다. 어느 순간엔 '이런 최고의 환경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반은 성공이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더라.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살아남는 데에만 신경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에 던져 놔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은 경쟁이 심하지 않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쪽 상위권은 한국보다 더 심하다고 들었다.
"정말 치열하다. 우리 학교는 시골에 있었고, 기차나 택시를 타고 주변 마을로 가려면 부모님과 학교 허락을 받아야 했다. 나와 친구들의 최대 일탈은 마을 카페 가서 공부하는 거였다. 주말에는 자연스럽게 학교 도서관에 가서 내내 과제를 했다."
-이렇게 활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어떻게 참았나.
"사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하다'가 아니라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해야 한다'였다. 그래서 불만은 없었다."
-사실상 미국의 중·고등·대학교를 모두 경험한 건데, 혹시 학교마다 또 차이가 있나.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대학교에서 많이 달라졌다. 나는 항상 전통적인 루틴을 밟아 왔고, 내가 나온 고등학교만 해도 1700년대에 설립됐다. 굉장히 역사가 길고 규율이 엄격한 학교였다. 반면 미네르바 대학교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해 특수화된 학교고 생긴 지 5년 정도 됐다. 4년 동안 7개의 다른 국제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진행한다. 매 도시가 캠퍼스인 거다. 그게 가장 큰 차이였다."
-미네르바 대학교에 지원한 이유는 뭔가.
"그 당시에 영국에서 1년 동안 국제학교를 잠시 다녔다. '갭 이어(Gap Year)'라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삶을 되돌아보거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 시기에 창업에 관심이 생겼다. 미네르바 대학교의 최대 장점이 학기마다 각 도시의 비정부기구(NGO)들이나 기업들과 한 학기 내내 협업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맥도 만들고 스펙도 쌓을 수 있으니 '해볼 만하다' 싶어서 지원하게 됐다."
-원래 목표는 사업가였던 셈인가.
"창업도 그렇고, 내 상세 전공이 '브랜드 매니지먼트'다. 사실 대학교 1학년 여름에는 컨설팅 쪽으로 인턴도 했다. 근데 '이거 평생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달려왔는데…그래도 다행히 인턴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틱톡 찍는 이중생활을 하다가 빵 떴다."
-당시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반대가 심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숏폼 등에 부정적이다 보니 '유학을 그렇게 했는데 꼭 (크리에이터를)해야겠냐'고 하시더라. 그런데 아버지께서 '팔로워 10만명을 모으면 인정해 주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고, 내가 정말 악바리로 해서 한 달 만에 10만명을 찍었다."
"지금은 가족 채팅에 '오늘은 왜 영상 안 올려' '아빠가 댓글 달았는데 왜 답 댓글이 없어' 등의 내용이 올라온다. 부모님은 '은퇴하고 매니저를 하겠다'고 할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다. 아버지는 나름 출연 욕심이 있으셔서 이미 영상에도 등장했다. 심지어 잘하신다."
-미네르바 대학교의 자유로운 학풍이 크리에이터 활동에도 도움을 줬을 것 같다.
"맞다. 원래는 학기마다 도시를 이동해야 하는데, 나는 한국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학업을 병행하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만약 내가 아이비리그 등 전통적인 학교에 갔다면 또 캠퍼스 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을 거다. 이렇게 취미를 커리어로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을 것 같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해외에 오래 살았는데, 스스로 정체성을 어디에다 두는지도 궁금하다.
"완전히 한국 쪽이다. 심지어 국뽕도 있다. 외국에서도 '케이팝 전도사'고, 한국 메이크업도 많이 소개해 준다. 한국어도 원래는 완전 유학생 발음이었는데, 2~3년 쭉 붙어있다 보니 '언어 패치'가 그 누구보다 잘 된 것 같다."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다들 호의적이고, 굉장히 띄워 준다. 한국인 친구들이든 미국인 친구들이든 '정말 네게 잘 맞는 것 같다' '행복해하는 게 보인다' '축하한다'고 한다."
-조심스럽지만 키가 굉장히 아담한 편이다. 키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도 있을까.
"미국 친구들은 '애는 정말 작지만 성격은 거대하다'고 한다. 항상 그룹에서 제일 작은 편이다. 그리고 키즈 코너에서 옷을 사니까 돈이 좀 굳는 장점이 있다. 친구들이 맨날 쇼핑할 때 '넌 그냥 키즈 코너에서 쇼핑해' 하는데, 진짜로 한다."
-뷰티·패션 쪽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넘쳐나는 게 옷이다. 금방 질려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영상 찍을 때 느낌에 신경을 쓰다 보니 같은 옷을 3번 이상 안 입게 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미 뷰티·패션계를 점유한 크리에이터가 많지 않나. 그래서 나는 해외 브랜드를 다루거나 '유학생 코디' '미국에서 핫한 패션' 등에 집중하려 한다."
-콘텐츠에서 추구하는 캐릭터가 있나.
"내 영상에서는 단 한 번도 코미디 포인트가 빠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웃기려고 발악하는 스타일이라, 웃음꾼이 되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숏폼 영상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가서 죄책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 그걸 덜어드리기 위해 '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영상을 만들려고 한다."
-틱톡에서는 이미 팔로워 200만명을 넘었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틱톡만 했을 때는 롯데월드처럼 학생 친구들이 많은 곳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구독자 10만명을 넘긴 기점부터는 20대 여성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더라. 한 번 나가면 누군가는 꼭 알아보시는 것 같다."
-혹시 개인 음반 활동 계획도 있나.
"그러기엔 내가 노래를 너무 못 부르는데…근데 랩은 한 달 정도 과외까지 받았다. 특히 윤미래의 랩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에 크리에이터 랄랄님도 굉장히 바이럴한 음원을 내시지 않았나. 언젠가 내게 다양한 활동을 할 여유와 기회가 생긴다면 '와이 낫(Why Not)?이다."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사실 올해 말까지 구독자 20만명을 모으는 게 목표였는데, 2월에 이뤄냈다. 현재 장기적 목표로는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 달성'과 '대학원 진학'을 두고 있다. 숏폼에서 다양한 광고를 하게 되면서, 스토리보드를 영상으로 구체화하는 게 너무 좋더라. 그래서 광고 기획 쪽으로 석사를 하고 싶다. 언젠가 이 방향으로 회사를 차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쉽게 쉬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맞다. 시간이 남는 걸 못 견뎌서 항상 일을 만든다. 쉴 땐 취미를 즐기는 편이다. 그동안 디제잉 레슨도 세 달 정도 받고, 노래와 연기도 배웠었다. 약간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취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사실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다 보면 일과 휴식의 경계가 많이 무너진다. 물론 균형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후 세계에서 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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