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결혼했냐고 물었더니[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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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박의춘 북한 외무상의 앞길을 막았다.
언제 또 북한 고위관료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으랴.
북한 매체에 리설주가 등장하면서 갓 집권한 김정은의 결혼 여부에 온통 관심이 쏠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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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동·지·는·장·가·갔·습·니·까?”
2012년 7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박의춘 북한 외무상의 앞길을 막았다. 엉겁결에 떠오른 열두 자를 꾹꾹 눌러 내질렀다. 언제 또 북한 고위관료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으랴.
칠순을 훌쩍 넘긴 노회한 외교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른 기자가 3차 핵실험 시기를 물었을 때는 빤히 쳐다보며 거드름을 피우던 것과 딴판이었다. 최고존엄에 대한 질문에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기다리던 엘리베이터를 팽개치고는 경호원들과 계단으로 황급히 도망치듯 사라졌다. 북한 매체에 리설주가 등장하면서 갓 집권한 김정은의 결혼 여부에 온통 관심이 쏠릴 때였다.
박의춘은 천기누설을 피하려 줄행랑을 쳤지만 속으로 곪아 썩는 실상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온 북한 외무성 과장이 선전용 유인물을 뿌렸다. 작성자에 2007년 사망한 백남순 외무상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외교관들조차 흐리멍덩했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 본사에 내용을 타전하는데 외교부 당국자가 지나가며 한마디 보탰다. “북한이 곧 망할 징조네.”
그랬다. 10년 전 북한은 무너질 대상이었다. 굳이 손을 내밀 필요가 없었다. 언론은 앞다퉈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다뤘다. 서른 살도 채 안 된 김정은이 당장이라도 권좌에서 쫓겨나길 기도하듯 주술에 가까운 비판이 난무했다. 이명박 정부는 통일 자금을 모으겠다며 달항아리를 빚었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을 외치면서 축배를 들려 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해 보였다.
착각이었다. 이후로도 북한은 핵실험을 네 번이나 더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핵 보유국이나 다름없다. ‘선대의 유훈’이라던 비핵화는 희망고문이 됐다. 대북제재 수위를 높일수록 미사일 도발은 기승을 부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백기를 들 때까지 다시 펀치를 날릴 참이다. 통 크게 치고 나가려던 ‘담대한 구상’은 힘이 빠졌다. 그러자 인권을 무기로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겨누고 있다. 원칙을 강조하며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웠다. 통일부에는 ‘대북지원부’라는 주홍글씨를 새겼다. 동시에 교류협력의 숨통을 끊었다.
의욕적인 변화다. 강공책을 총망라했다. 토끼몰이하듯 사방을 틀어막았다. 북한을 된통 혼내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체급을 한껏 끌어올렸다. 완력으로 제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뒤에서 딴청 피우는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편이 아니다. 결정적 순간마다 판을 깨면 도리가 없다. 올가을 코로나 봉쇄가 풀린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어디로 달려갈지 뻔한 일이다.
“정치체제를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보는 지도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3월 본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대북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유의 가치를 앞세워 북한을 압박하면 체제가 우월한 남한 중심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북한을 얕보며 뭉개려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청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음 스텝이 궁금하다. 아무리 몰아쳐도 김정은이 또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은 이미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면서 안면을 바꿨다. 만만하게 보던 북한이 다시 한판 붙자며 덤비고 있다.
김광수 정치부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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