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픈데 퇴원하라니" 노조 총파업에 의료현장 혼란
종합병원, 대체 근무 등 공백 메워
응급실은 인력난에 입원 제한도
정부의 요구안 수용, 파업 철회 관건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적정 인력 확보와 공공의료 확충 등을 요구하며 13일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04년 이후 19년 만에 단행된 총파업 첫날, 우려됐던 의료 현장 대혼란은 피했지만 일부 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과 병동 운영에 혼선이 빚어졌고 환자들은 대기시간이 늘어나는 등 불편을 겪었다.
보건의료노조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의료기관)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7시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쟁의권을 확보한 조합원 6만여 명 중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인력 1만5,000명을 제외한 4만5,00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의료기관 주 5일제 근무를 요구했던 2004년에 1만여 명이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보건의료노조 출범 이후 최대 규모 총파업이다.
폭우를 뚫고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 2만여 명(경찰 추산 약 1만7,000명)은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 및 직종별 인력 기준 마련 △의사 확충 및 불법의료 근절 등 7대 요구안 수용을 촉구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최소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이라도 보장되면 좋겠고 의사 업무는 의사가, 약사 업무는 약사가, 간호사 업무는 간호사가, 의료기사 업무는 의료기사가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으로 공공의료 중추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암센터도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수술 등 진료 일정을 미리 조정해 파업 당일 큰 혼란은 피했지만, 암센터는 예정된 수술이 모두 취소됐고 중앙의료원은 환자 수가 평소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개점휴업' 상태와 다름없었다. 파업이 마무리되면 미뤄둔 수술과 진료가 쇄도하면서 또 다른 파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날 경기 고양시 암센터 로비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흘렀다. 수술과 진료가 축소되면서 개점휴업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암센터는 파업에 대비해 10일부터 입원·수술·외래 진료를 줄이기도 했다. 평균 하루 45건의 수술을 하지만, 노조가 파업하는 이틀간 예정된 수술 100여 건을 모두 취소했다. 암센터 관계자는 "'아픈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며 항의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중앙의료원은 인력 부족 탓에 일부 진료과들을 통합 운영했다. 평소 마취통증의학과를 찾는 환자는 3층으로 가야 하지만, 이날은 1층 외과계 통합진료실로 가야 했다. 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최저 인력으로 운영해야 해 교수들도 다른 곳에서 대기하다가 통합과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국립병원들은 당장은 혼란을 피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파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진료를 미룬 환자들이 많아 업무 가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암센터는 전날 극적인 노사 협상 타결로 의료 인력이 속속 복귀하면서 내보낸 입원 환자들을 불러들이거나 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자를 알아보고 있다. 서홍관 암센터 원장은 "입원이나 수술은 준비 기간이 필요해 진료가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주말에도 입원을 유도해 다음 주부터 정상화되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에선 우려했던 '의료 대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필수인력 배치와 대체 근무자 투입으로 파업 공백을 메운 덕이었다. 다만 일부 병동과 응급센터에선 간호인력 부족을 이유로 입원을 받지 않는 등 제한적 차질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선 약 300명의 조합원이 1층 로비에서 파업 출정식을 하는 사이, 환자와 보호자 약 스무 명이 수납 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치과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조모(57)씨는 "간호사가 적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조합원 약 1,600명 가운데 260명이 파업에 참여한 고대구로병원에선 외래진료나 재활치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오전 10시 30분쯤 병원을 찾은 김모(73)씨는 "무릎이 아파 한 달째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내일 자로 바로 예약이 접수가 됐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시경센터를 찾은 A씨는 "어제 병원에서 미리 공지를 해서 그런지 오히려 사람이 덜 한 느낌"이라면서 "의사들까지 나서 접수를 하고 있어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권 대다수 대형병원에선 비노조원들의 지원 근무와 필수의료인력 확보로 파업의 부작용이 터지지 않도록 대처하고 있었다.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행정직원들을 동원해 안내 업무 등을 거들도록 하고, 진료 예약 환자에겐 문자로 미리 진료 지연 가능성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 파업 참여 조합원 중 10여 명은 응급상황 대비 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다만 다수 인력이 환자를 집중적으로 돌봐야 하는 응급실이나 병동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며 새 환자의 입원을 제한하거나 조기 퇴원을 권유하는 일도 발생했다. 안와골절로 고대구로병원 성형외과에 입원 중인 김모(30)씨는 "원래 오늘이 수술이었는데 병원 측에서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음 주 월요일로 연기했다"고 토로했다. 고대안암병원에선 전날부터 신규 입원 접수를 중단하고 경증 환자는 되도록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조치하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가 정부의 요구안 수용을 조건으로 '무기한 파업'을 예고한 만큼 파업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노모의 진료를 위해 강동경희대병원을 찾은 윤모(55)씨는 "아직 코로나가 종식된 것도 아닌데 병원의 업무 차질이 심해지는 건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선포한 보건의료노조는 14일 서울·세종·부산·광주에서 파업 2일차 총파업대회를 열고 이후 개별 사업장별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라, 진료 차질과 환자들의 불편이 장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
복지부는 파업 첫날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 '관심'을 '주의'로 한 단계 높였다. 복지부는 이번 파업이 노동쟁의 조정신청과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 절차적으로는 합법의 범위에 있지만 내용 면에서는 파업의 권한을 벗어날 수도 있다고 보고 필요할 경우 업무복귀 명령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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