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민주주의는 가능하다[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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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우리가 당연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일까.
인류가 수백 년 투쟁해 쟁취한 민주주의가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치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해로운 체제라면 어떨까.
미국의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은 신간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사뭇 체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완결무결한 정치체제로 여길 이유가 없다는 브레넌의 생각은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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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우리가 당연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일까. 인류가 수백 년 투쟁해 쟁취한 민주주의가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치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해로운 체제라면 어떨까. 민주주의라는 도구가 우리를 해롭게 한다면 우리를 이롭게 할 더 유용한 도구를 손에 쥐어야 하지 않을까. 이 도발적인 문제제기가 신간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의 출발점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은 신간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사뭇 체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유권자 유형을 호빗, 훌리건, 벌컨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민주주의 반대 주장을 전개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 속 호빗족에서 빌려 온 '호빗'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지식도 많지 않은 비투표자를 의미한다. 광적인 스포츠 팬을 의미하는 훌리건은 정치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만 정치 지식을 편향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투표자를 뜻한다. 벌컨은 영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뾰족한 귀의 벌컨족에서 따온 이성적인 유권자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편향적이지 않으며, 증거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시민이 벌컨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문제는 벌컨이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시민은 호빗 아니면 훌리건이며 결국 호빗과 훌리건이 주도하는 규칙이기 때문에 이론처럼 완벽하게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이 브레넌의 주장이다. 평등한 1인 1표를 통해 국가를 운영할 공직자를 공정하게 선출한다고 믿지만, 결국 다수의 유권자가 잘못된 정치 지식이나 편향된 생각을 바탕으로 투표해 모두에게 해로운 공직자를 선출하게 되는 구조로 고착화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에서 대안을 찾는다. 그러면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는 '참정권 제한제'나 더 유능한 시민에게 투표권이 추가로 주어지는 '복수 투표제'를 소개한다. 다만 '정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저자는 이 제도에 앞서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특정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능력 시험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런 생경한 제도가 정말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완결무결한 정치체제로 여길 이유가 없다는 브레넌의 생각은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올 만하다. 모두가 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불합리함을 느끼는 시민들,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사회 분열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의 마음속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이상'이 아닌 '허상'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힘을 빼앗는 대신 다수에게 힘을 실어 준다. 민주주의에서 시민 개개인은 거의 무력하다"는 저자의 말이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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