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도움받던 이들이 돕는 자가 되다
“목사님, 이것 가지고 올라가시겠어요?” “얼마든지 가지고 갈 수 있지. 내가 그것도 못 들겠어!” “아니요, 목사님이 이런 것 들고 다니시는 것이 좀 그래서!” “수확할 것 있으면 더 가지고 와요!”
산마루공동체의 영식(가명) 형제가 땀을 흘리며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단호박, 가지, 쌈채소 등을 따서 보따리를 싸준다. 평창 해발 700미터 산중에도 30도 가까운 무더위 때문에 비닐하우스 안은 40도는 될 듯하다. 이 더위에도 영식 형제는 기쁜 마음으로 교인들과 서울역의 노숙인이나 쪽방촌 어려운 이들에게 신선한 유기농 고랭지 채소를 전해주려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 나는 배낭을 메고 야채를 양손에 들고 나섰다. 몇 발짝 가기도 전에 다친 허리가 아파 왔다. 서울역에서 내려 정류장으로 가는데, 양 어깨가 끊어지는 듯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한 날이 왔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영식 형제는 노숙하던 시절에는 알코올로 간이 망가지고 행려병자가 되어 병원에 머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미래의 성공을 꿈꾸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소망과 목표가 작지만 이루어져가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산마루교회가 노숙인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노숙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립해 일상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분들이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그분들을 돕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5년 전 평창에 산마루공동체를 세웠다. 치유 농업, 자립 자활 농업을 위한 것이다.
주일 아침, 서울 교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예배를 한 후 전날 가지고 온 유기농 채소로 식사를 했다. 모두가 감동했다. 그 누가 제초제도 쓰지 않고, 해발 700미터 맑은 물로 기른 고랭지 무공해 채소를 먹어 볼 수 있을까.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선물이 내게 왔다. 비닐봉지 하나를 열어보니 아주 단단하고 건실해 보이는 단호박 3개가 들어있었다. 또 하나는 알프스산 소금이었다. 보낸 분들은 노숙했다가 노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보낸 사연을 물어보니, 전날 쪽방촌에서 거동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급식 봉사를 하고 와서 감사한 마음에 주는 선물이란다.
한 분은 여성인데, 노숙 생활 약 10년이 되어서 딸과 재회했다. 따님이 산마루교회 노숙인 자원 봉사를 하던 중 헤어졌던 어머니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후 가족들이 화합하여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쪽방촌 급식 봉사 등으로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는 뇌암 수술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 하지만 쪽방촌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한때 행려병자로서 보호자가 없어 부득이 내가 보호자 역을 했었다. 주치의는 그가 수술실에서 살아 나올 확률이 10% 정도라 하였고, 살아 나와도 의식이 돌아와 대소변을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수술 후 우리는 거처를 마련해 주고 함께 기도했다. 지금은 성경을 필사하며 쪽방촌 선교를 하며 남을 돕는 이가 되었다. 이번 여름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내가 쓰임받은 것이 그저 감사하여 더위를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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