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80) KT 금산위성센터
나는 한국 최초의 위성안테나입니다. 인삼밭과 논이 늘어져 있는 허허벌판, 충청남도 금산에 나무를 심듯이 세워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위성지구국이 개국한 1970년 사진을 보면 나만 덩그러니 혼자 서 있네요. 위성지구국은 인공위성과 통신해 국제전화, 방송신호 등을 세계 각국과 주고받는데 나를 통해 수신된 신호는 다시 방송사를 거쳐 각 가정으로 전달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중심으로 360도 주위에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지진·태풍 등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며 호우가 심하지 않은 지역이 적합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안테나의 수신을 방해하는 인공잡음이 발생되는 비행장, 공업단지가 인근에 없어야 합니다.
흰색 원반에 지름이 27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안테나인 내 모습과 비교되는 건 1970~1980년대 가정집 TV 안테나입니다. 실내용 TV 안테나의 역할을 기억하시나요? 비가 심하게 오면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서 TV 화면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볼록한 브라운관 TV 상단에 부착되어 있는 수신 안테나를 쭈욱 뽑아서 전파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좀처럼 화면 상태가 똑바로 되지는 않았죠
여기서 내 자랑 좀 하겠습니다. 해외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를 녹화가 아닌 생방송으로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된 건 1970년에 내가 개통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국내 방송사가 해외 스포츠를 위성 중계하는 도중 TV 영상이 끊길 때마다 아나운서의 단골멘트 “시청자 여러분! 위성 상태가 고르지 못한 점을 양해해 주십시오”는 아날로그 시절, 내 능력의 한계였어요.
이제, 금산 위성지구국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우주위성사업 전진기지로 발전해 24시간, 전 세계에 위성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하얗던 내 몸체가 눈·비·바람을 맞으며 어느새 거뭇한 색깔로 변해버렸어요. 은퇴할 때가 된 겁니다. 50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안테나로서의 수명을 다한 거죠. 다행히 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 문화재 제4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처음 뿌리 내렸던 금산 위성지구국(현재 KT금산위성센터)에 ‘최고령 안테나’라는 조형물로 계속 머물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난해 촬영한 나의 은퇴식 사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팔순잔치에 딸, 아들, 며느리, 사위, 손녀, 손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듯이 위성안테나 40여기들이 후손들처럼 하늘을 향해 포진해 있습니다. 사진 중앙에 흰색 페인트로 도색해 새롭게 단장한 안테나가 바로 나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호를 잡기 위해 반세기 동안 신경을 곧추세웠던 안테나를 이제 접고 편히 쉬려 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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