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자동차, 슬픈 동물
자가용은 움직이는 부동산이다. 두어 평, 공중에 마련한 땅뙈기다. 이것처럼 인정머리 없는 물건이 또 있을까. 문을 탁, 닫자마자, 뺑소니치듯 휙 자동으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차 시동 걸 때 반드시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키를 돌려야 한다. 혹시 모를 급발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단 시동을 걸고 나면 핸들과 함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끊임없이 번갈아 조작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주 임무인 자동차. 그렇다고 전진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려운 건 외려 후진이다. 그냥 앞으로 가는 일이야 누구에게나 쉬운 일. 가속보다는 감속을, 다시 말해 욕망을 능숙히 통제하게 되었을 때 운전자는 비로소 초보 딱지를 뗄 수가 있다.
운전대를 잡은 지가 30여년이 되었다. 차 안에 머문 시간을 이어붙이면 우락부락한 사내 하나가 뛰어나올까. 예의 순서대로 시동을 걸다가 자동차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주행 중에 브레이크보다는 액셀러레이터를 많이 사용하기 마련이다. 근데 왜 브레이크가 액셀러레이터보다 더 운전자의 발 가까운 곳에 있을까. 왜 가속기보다는 제동기가 조금 더 클까?
자동차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액셀러레이터는 입이고 브레이크는 귀라 할 수도 있겠다. 그저 입은 떠들고 먹느라 하루 종일 분주하다. 그것은 앞으로 달리도록 고안된 액셀러레이터의 성능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나 귀를 보라. 그저 가만히 달려 있을 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잠자코 있다. 그야말로 몸에서 침묵의 일번지인 귀. 그러니 귀는 브레이크와 그 기능이 흡사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아무리 입이 까불어도 귀의 딱 절반에 불과할 뿐인 건 이런 까닭이다.
목적한 곳에 이르자 자가용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차는 시동이 걸릴 때와 마찬가지로 시동이 꺼질 때도 브레이크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그리고 토끼 사냥이 끝나고 가마솥에 삶아지는 사냥개처럼 자동차는 한쪽 구석에 쿡 처박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크르릉크르릉 가볍고도 깊게 한숨을 내쉬는가. 누가 뭐래도 자동차는 앞으로 달리는 데 능숙한 존재. 하지만 제아무리 길게 날뛰어도 결국은 브레이크, 즉 침묵에 코가 꿰인 슬픈 동물인 것이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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