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거북선의 비명, 국민의 비명

김준호 부산취재본부 기자 2023. 7.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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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만들더니, 다시 또 부숩니다. 제가 낸 세금으로요.”

지난 11일 오전 경남 거제시 거제 해양문화관 내 위치한 거북선이 철거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일운면 조선해양문화관 앞 야외광장에 놓인 거북선이 굴착기의 삽에 맥없이 부서졌다. 한 시민이 “우리 세금이 이렇게 새는구나 싶다”고 했다. 이 거북선은 지난 2011년 16억원을 들여 제작했다. 금강송 대신 대부분 수입 목재가 사용된 것이 드러나 ‘짝퉁 거북선’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부식과 파손으로 바다에 띄우지 못했고, 뭍으로 건진 뒤엔 사실상 방치됐다. 연간 수천만원의 유지 보수 비용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자체는 세금 1800만원을 재차 투입해 거북선을 부쉈다.

5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활약하던 거북선은 지자체의 관광 자원으로 환생했다. 2001년 소설가 김훈의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칼의 노래’가 발표되고, 2004년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이순신 장군 마케팅은 더욱 불이 붙었다. 당시 관련 업무를 했던 경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 옷깃만 스쳤어도 관광지가 된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거북선도 그렇게 부활했다. 학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을 3척~5척 정도로 보는데, 현재 전국에 10척(거제 제외)의 거북선이 있다.

이 거북선들은 역시 철거된 거제 거북선과 비슷한 처지다. 2008년 46억원을 들여 만든 전남 해남 거북선은 2017년 이후 해상 운행이 종료된 채 방치되고 있다. 경남 사천시가 2001년 8억7000만원을 들여 만든 거북선은 2017년 7472만원에 팔렸다. 나머지 거북선들도 노후화와 관리 비용 문제로 지자체의 골칫덩이가 됐다.

전국엔 또 다른 형태의 거북선들이 산재해있다. 지자체 주도로 추진한 관광 시설들이다. 강원 원주시는 선로 매입도 전에 54억원을 들여 관광 열차부터 덜컥 사들였다. 열차는 언제 달릴지 기약도 없다. 1200여억원을 들여 조성한 대구 군위군의 삼국유사테마파크는 3년째 적자 운영 중이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 공공시설 대다수가 적자·부실 운영에 놓인 것은 면밀한 사업성 검토, 사후 관리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며 “특히 선출직 지자체장은 재선·3선을 하기 위해 ‘일단 짓고 보자’는 과시성 전시 행정, 인기 영합 위주의 정책 추진에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50% 수준으로 낮다. 국비 지원 없이는 살림도 꾸리지 못할 처지의 지자체도 많다. 코로나 후유증은 이어지고, 고물가 등으로 국민 삶은 갈수록 팍팍한 요즘이다. 수천만원, 수억원도 국민 눈높이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모두 피 같은 내 세금에서 나온 돈이기 때문이다. 거제 거북선이 부서질 때 나는 굉음을 듣고 한 시민이 “거북선의 비명 같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금 새는 모습을 본 ‘국민의 비명’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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