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버티는 삶
12년 전 일어난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후유증으로 신경병증성 통증을 얻었다. 그 탓에 내 하반신은 밤낮없이 불에 데고, 벌 떼에 쏘이고, 바위에 짓눌리고, 칼에 찢기는 듯한 통증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이 지독하고도 만성적인 통증은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동반하여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이젠 통증이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 12년간, 혹시라도 소설 쓰는 데 방해가 될까 싶어 비마약성 진통제만을 고집해 왔다. 약의 영향에서 벗어나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만 뭐든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통증은 하루 종일 끔찍하게 내 몸을 짓이겨 놓았다. 그런데도 12년을 하루같이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다행히 책을 읽고 소설을 쓸 수는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 지쳐버렸다. 언제부턴가는 정작 통증이 아니라 통증에 지쳐버린 내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에 시달릴 정도였다. 결국 몇 달 전부터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숱한 망설임과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소설이 덜 중요해져서가 아니라 더는 고통을 참아낼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는 버티는 자세만으로는 삶을 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는 두려워한 것처럼 내 정신을 취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막연한 기대처럼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전까지보다 너울처럼 덮쳐 오던 통증의 빈도가 조금 낮아진 정도였다. 결과적으론 여전히 극심한 통증 속에서 느리게 책을 읽고 소설을 쓴다. 버티기를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여전한 모습으로 계속되었다.
내가 통증을 참고 견뎠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제각각의 바람과 이유로 버티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유가 무엇이든 버티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너지는 순간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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