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한국… 새 건축을 만들 기회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2023. 7.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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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우리나라 국민의 60%는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그런 대한민국 아파트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아파트는 20세기에 철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라는 신기술이 건축에 도입되면서 만들어진 주거 형태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들어서 12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우리 주거는 대부분 단층이었다. 1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는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공중의 빈 공간을 부동산 자산으로 만든 공간 혁명이었다. 아파트라는 인구 밀도가 높은 주거단지가 형성되자 주변에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가 늘었다. 비로소 사람들은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영업이 생겼다. 시장경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파트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획일화된 디자인이다. 적은 돈으로 많은 주택을 빠르게 공급해야 하다 보니 표준화와 대량생산이 필요했다. 표준화는 획일화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아파트의 평면과 모양이 획일화가 되면 내 집과 다른 사람 집의 가치 차이는 ‘집값’밖에 남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가치관을 정량화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은 “연봉 5000만원, 30평형 아파트, 2000CC 자동차”라는 정량화된 가치다. 프랑스는 중산층을 “철학적 토론을 할 수 있거나 나만의 요리법을 가지고 있다” 같은 정성적인 기준으로 규정한다. 모든 아파트의 모양과 크기가 똑같아지다 보니 아파트가 화폐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아파트가 위치한 동네와 평형대만 알면 가격이 거의 정해진다.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팔아서 다른 아파트를 살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아파트는 화폐처럼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는 재테크의 중심이 되었다.

대한민국 아파트가 획일화된 이유는 초기의 제작 과정에 기인한다. 아파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하는 택지 개발에서 시작한다. LH는 농지를 싸게 구매해서 대형 필지로 구획하고 대형 건설사에 판매를 했다. 필지가 크다 보니 대형 건설사만 구매 가능했다. 필지가 크게 구획되니 수천 가구가 단지 형태로 한 번에 개발되었다. 건설사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표준화와 대량생산으로 공급했다.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모델이다. 그리고 소비자는 모델하우스만 가보고 인테리어만 보고 아파트를 구매했다. 우리의 주거문화에는 인테리어만 있고 건축 디자인은 없었다. 건설사는 그 아파트에 자사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건설사 중심의 아파트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렇게 50년 동안 획일화된 아파트가 만드는 문제 속에 살아왔다.

이런 기형적인 시장에 변화의 가능성이 찾아왔다. 바로 재건축이다. 기존에는 건설사에서 디자인을 마치고 나서 소비자가 살 수밖에 없었지만 재건축은 조합원들이 적어도 두세 가지의 디자인 중에서 고른다. 소비자인 조합원들이 디자인을 선택하고 이후에 건축을 하니 다양성이 나올 가능성이 조금은 커졌다.

내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도 얼마 전 여의도의 광장아파트 1동과 2동의 재건축 프로젝트에 당선되었다. 지금까지는 재건축 디자인 수주에 뛰어들려면 수백 명 규모의 초대형 설계사무소에서만 가능했었다. 일반적인 건축설계 사무소가 재건축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안 좋은 관행과 기형적인 설계비 지급 방식 때문이다. 설계단가가 비정상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건설사가 결정 나기 전까지는 설계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무실은 잘못하면 파산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더 다양한 건축가들이 진입하면서 기존의 획일화를 양산하는 카르텔을 깨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량화된 가치관을 깨뜨리고, 아파트 재테크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나만의 가치에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재건축 조합원들의 현명한 디자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건축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 건축물은 건설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이 건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건축은 예술도 아니다. 그저 보기 좋고 예쁘고 멋진 디자인만이 좋은 건축은 아니다.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건축은 건축 공간을 통해서 작게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디자인하고, 크게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건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조합원과 소비자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내린 선택이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우리 후손에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 런던, 파리, 뉴욕은 수십, 수백, 수천 년 전 조상들의 결정이 훌륭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지금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도시들은 그 나라가 가장 잘살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로 만들어졌다. 우리 민족은 지금이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시대다. 지금이 우리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어나가는 재건축과 공공 건축물들이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결정할 것이다.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부디 좋은 결정들을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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