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명품 선망’이라는 시대정신

기자 2023. 7.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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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매체 특성상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는 ‘인플루언서’ 소재 콘텐츠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인플루언서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 패리스 힐턴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들의 명암을 조명했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밈>(2019), 유명 사진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 하나로 ‘깜짝 스타’가 된 무명배우의 성장통을 그린 오리지널 일본 드라마 <팔로워들>(2020) 등이 대표적이다.

김선영 TV평론가

인플루언서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난달 30일 공개된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셀러브리티>(사진)에서도 이어진다. 유명 인플루언서인 고교 동창 손에 이끌려 SNS 세계에 입성한 주인공이 빠른 속도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그보다 빠르게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한층 막강해진 시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공개 직후만 해도 화제성이 그리 크지 않았으나, 2주째인 지난 12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라 이목을 끌었다.

<셀러브리티> 화제의 중심에는 주인공 서아리(박규영) 캐릭터가 있다. 평소 인터넷과 담을 쌓고 살다가 생계를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게 된 서아리는 마치 SNS 세상의 앨리스처럼 그 낯설고 기묘한 공간을 찬찬히 탐험해나간다. 팔로어 숫자가 곧 돈과 권력이 되는 이 신종 원더랜드에서 인플루언서들은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유명인과 인맥을 맺으려 물밑 작전을 벌이고, 때론 자극적인 이슈로 화제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전시해야 한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진심으로 승부하려 했던 서아리조차 점차 요동치는 팔로어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드라마는 서아리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우리 시대 신흥귀족으로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의 노골적인 욕망과 불안을 보여준다. 그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익명의 팔로어들, 그 군중심리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셀러브리티>의 가장 유의미한 지점은 서아리의 예리한 시선을 통해 SNS 시대 신풍속도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반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좀 더 유심히 보면 이 작품의 진짜 셀링 포인트는 인플루언서들의 영업전략과 꼭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명품 전시’다. <셀러브리티>는 서아리가 인플루언서로 성장해가는 과정 곳곳에 화려한 명품쇼를 배치한다. 실제 인플루언서들도 깜짝 등장해 볼거리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재벌과의 신데렐라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일생일대의 살벌한 폭로전을 진행 중인 서아리가 가장 “상냥한 시간”으로 회상하는 장면이 재벌2세 준경(강민혁)과 함께한 슈퍼카 드라이브 신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답답해하는 서아리에게 슈퍼카의 지붕을 열어주던 준경의 배려를, 그녀는 로맨틱하게 회상한다.

<셀러브리티>에 반영된 명품 선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아리의 성공 요인에도 명품이 결정적 힘을 발휘한다. 사실 서아리의 유명세는 금수저 출신 배경이 알려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녀를 선망한 동창 민혜(전효성)는 인플루언서가 돼 아리와 재회하자 그 배경을 이용해 팔로어를 더 늘리고자 했다. 아리의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혜가 그를 ‘손절’한 뒤에도, 서아리는 상류층 출신다운 ‘고급스러운’ 심미안 덕에 인플루언서로 살아남는다. 명품을 기준으로 한 계급 구조는 파워 인플루언서 모임에서도 드러난다. 모임의 최상층에는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인플루언서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명문가 출신 윤시현(이청아)이 있다.

<셀러브리티>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SNS의 허영심을 저격하지만, 실상 더 노골적인 명품 선망으로 점철된 것은 드라마계다.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한 편의 K드라마 <킹더랜드>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드라마다. 극의 주요 배경은 그냥 VIP도 아니고,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온 VVVIP들만을 상대하는 호텔 라운지다. <킹더랜드> <셀러브리티>에 이어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시청 순위 3위에 올라 있는 <마당이 있는 집>, 4위 <이번 생도 잘 부탁해>도 상류층 문화가 중심 배경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명품 선망이라는 시대정신을 부추기는 것은 어디인가.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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