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도쿄가 서울을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정우상 정치부장 2023. 7.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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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흉물 된 도심 고가로 골치… 청계천 복원한 서울에 감탄
그사이 도쿄 천지개벽 서울 퇴보… 운명 가른 리더십과 마스터플랜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도쿄 한복판에 니혼바시(日本橋)라는 다리가 있다. 에도(江戶)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도시 정비 계획으로 1603년 처음 건설됐고, 몇 번 화재·소실을 거쳐 1911년 지금 모습이 됐다. 기술적·예술적 측면에서 메이지(明治)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인정받아 1999년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곳에는 일본 국도(國道)의 시작을 뜻하는 도로 원표도 있다. 도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니혼바시다.

이런 배경을 안다면 니혼바시를 직접 보고 싶겠지만, 무작정 니혼바시역에 내렸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우선 찾기가 쉽지 않다. 니혼바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인 수도고속도로가 시야를 막고 있다. 길이 49m, 폭 27.3m의 작은 다리인 니혼바시는 육중한 고가도로 밑에 깔려 볼품이 없다. 고가도로는 니혼바시와 함께 그 밑을 흐르는 하천의 호흡까지 끊어 버렸다. 고가도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만든 일본 고도성장기의 상징적 존재지만, 이제는 천문학적 유지 비용과 도시 경관을 해치는 계륵이 됐다. 한 시절의 혁신이 현재의 걸림돌이 된 아이러니다.

가난했던 서울에 도쿄의 도심 고가도로는 동경 대상이었다. 서울은 1960년대 후반 도쿄 고가를 모델로 공사를 시작해 1976년 청계고가를 완공했다. 도쿄보다 훨씬 단순한 도로였지만 공사에 10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도쿄와 서울의 도심 고가도로 운명은 엇갈렸다. 도쿄 고가도로는 계륵 같은 존재로 곧 60년을 맞이하지만, 청계고가는 30년도 채우지 못한 채 2003년 철거됐다. 전환점은 청계천 복원이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자, 도심 고가도로와 니혼바시로 고민하던 도쿄는 충격에 휩싸였다. 2005년 와세다대 교수가 대표를 맡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모임’은 대표적 ‘나쁜 경관’으로 니혼바시와 고가도로의 기괴한 공존을 선정했다. 2006년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에는 ‘니혼바시의 하늘을 되살리는 모임’이 만들어져 고가 철거와 지하화를 제안했고, 고이즈미 총리도 이를 지지했다. 이처럼 도쿄가 서울을 진심으로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도쿄는 리더 한 명이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중앙차선제·환승제로 서울을 바꾸는 과정을 넋 놓고 지켜보며 그를 도쿄로 초대했다.

2006년 이명박 서울시장의 도쿄대 강연에선 청계천 예산이나 토목 기술이 아닌 리더십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대로다. 생계가 걸린 상인들의 반발과 달리 시민 단체와 정치권의 반대 투쟁은 말 그대로 정치적 이유였다. 이 시장은 강연에서 “철저한 현장 조사, 치밀한 계획과 최신 기술, 무엇보다 원칙과 성의로 시민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청중 500명은 서울의 리더십을 받아 적기 바빴다. 그런 때가 있었다.

청계천 이후 서울과 도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2년 도쿄 재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고이즈미 총리 같은 리더십도 있었지만 우리가 지금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 도쿄의 천지개벽은 매뉴얼의 힘이다. 한번 계획을 세우면 도쿄는 리더십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서울은 시민 단체 출신 서울시장의 10년 동안 심심해지고 후지고 낡아졌다. 그는 보존과 재생이라고 했지만 10년이 지나니 그건 퇴보였다. 서울은 앞으로 몇 번 리더십 교체가 있을 것이고, 이상한 철학이 또 등장해 도시를 퇴보시킬 위험성이 크다. 정치에 흔들리지 않을 서울과 국가 부흥의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치는 오염수다, 양평이다, 안드로메다 같은 논쟁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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