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키우더니… 이커머스 기업은 지금 ‘내부 수리중’
국내 IPO(기업 공개) 시장의 대어(大魚)로 꼽히며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거나 절차를 중단하고 있다. 고금리 여파와 유동성 감소로 경기가 부진한 탓에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게 외형적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커머스 업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코로나 기간 온라인 시장 확장에 편승해 덩치 키우기에만 급급했을 뿐 회사 내실을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적 개선에는 소홀했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로 꼽힌다. 업계에선 “기업은 결국 실적으로 말해야 하는데 흑자를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경기나 주식 시장이 좋아지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덩치만 키운 이커머스 업체들
지난 수년간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거래액 규모 늘리기에만 집중해 왔다.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덩치를 키워 경쟁사를 도태시키기 위한 시장점유율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 할인 쿠폰과 무료 배송을 제공하고, 최저가 경쟁으로 거래액과 매출을 늘렸지만 정작 수익은 내지 못했다.
지난 2018년 ‘5년 내 IPO’를 전제로 5000억원의 투자금을 받은 이커머스 11번가는 투자금 회수 기한이 다가오지만, 상장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IPO가 안 되면 투자자들이 대주주인 SK스퀘어의 지분까지 팔 수 있는 조건이 걸려 있어 IPO가 절실한 상황인데도 예상보다 낮은 기업 가치에 상장 절차를 시작조차 못 하는 것이다. 11번가는 2019년 5305억원이었던 매출이 작년 7899억원까지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0억원 흑자에서 1515억원 손실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11번가 기업 가치를 2조원 정도로 평가한다. 회사가 기대했던 기업 가치(4조~5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11번가처럼 ‘5년 내 IPO’와 ‘거래액 5조1600억원 달성’ 등을 조건으로 1조원을 투자받은 SSG닷컴도 상장 주관사까지 선정했다가 철회했다. 작년 거래액(5조9555억원)이 조건을 충족해 투자금 회수 위험은 낮지만 SSG닷컴 역시 작년에만 111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새벽 배송 업체 컬리도 2021년 말 진행한 프리(pre) IPO에서 4조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올초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지만 기업 가치가 1조~2조원에 그칠 거란 전망이 나오자 상장을 철회했다. 컬리는 2018년부터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작년엔 2335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내실 다지기 나서는 업체들
이커머스 업체들은 “초기 투자 비용 등으로 어쩔 수 없는 적자”라면서도 수익을 위한 사업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2019년 22.4%였던 온라인 침투율(전체 소비액 중 온라인 구매 비율)이 2021년 26.6%로 급증했다가 작년에는 0.1%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시장 성장세가 둔화했다. 더 이상 덩치 키우기 전략이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내실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강희석 SSG닷컴 대표는 “올해 적자 폭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11번가는 2025년까지 전체 사업 부문에서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수익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물류 창고 여유 공간을 제조사 등에 임대해 수익을 내고, 할인 쿠폰 대신 판매자들이 최저가로 판매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컬리 역시 식품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화장품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김포·평택 등에 대규모 물류 센터를 열어 물류 거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커머스 업체들이 흑자를 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업체 1위인 쿠팡의 경우 2010년 창업 이후 줄곧 영업손실을 내다가 작년 3분기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유동성 감소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있어 투자금 없이 자립 생존이 가능한 업체와 아닌 업체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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