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햄버거 먹지 마세요, 이젠 읽으세요
지난달 26일 미국 프리미엄 수제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파이브가이즈가 서울 강남에 문을 열었다. 장마철에도 개점 전날 밤부터 대기하는 사람들의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다. 한국 소비자들의 고급 햄버거에 대한 열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내 최초 들어온 고급 수제 버거인 쉐이크쉑 버거가 서울 강남에 개점하던 2016년 7월 말,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오픈 전날부터 1500여명이 밤새 줄을 섰다. 지난해 1월 서울 송파에 문을 연 고든램지버거는 가장 싼 햄버거가 3만원이었지만 긴 줄을 감수해야 했다.
고급 수제 햄버거에 대한 열광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유학·여행 등 해외 경험이 많고 자신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이들 소비패턴의 하나는 소비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플렉스’다. 플렉스는 SNS에서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실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을 해보면, 12일 현재 롯데리아는 44만개, 버거킹은 36만개이지만 후발주자인 쉑쉑버거는 44만개(쉐이크쉑 7만여개 포함)가 나온다.
미국 이민자들의 가난한 음식이던 햄버거가 전 세계에서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1954년부터 미국 전역으로 체인망을 확대했던 맥도널드 덕분이다. 맥도널드는 1950년대 최고 10%를 넘나들던 미국 경제성장의 후광을 업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맥도널드를 먹는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미국식 풍요를 경험한다는 환상을 전파했다.
쉑쉑버거나 파이브가이즈의 등장은 맥도널드의 등장과 퍽 닮았다. 스마트폰·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전 세계를 촘촘하게 잇는 SNS는 모두 미국에서 시작됐다. 최근 관심이 뜨거운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 역시 미국 주도다. 이 플랫폼들은 미국 주도의 디지털 세계에 대한 환상을 전 세계에 심고 있다. 이런 환상 탓에 소비자들은 SNS에서 본 콘텐츠를 현실로 옮기려는 역(逆)디지털화를 꿈꾼다. 하지만 SNS의 환상적 이미지를 현실에서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이런 간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편은 디지털 문해력이다. 우리 일상이 펼쳐지는 미디어이자 플랫폼인 SNS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정치·경제·문화적인 의미를 짚어내야 쏟아지는 디지털 콘텐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해력을 키우기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트렌디한 음식을 역디지털화(소비)하고 이를 다시 SNS에 올리는 것이 더 쉽고 더 큰 안도감을 준다. 게시물에 달리는 ‘좋아요’는 나름 치열하지만 한편으로 취약한 안도감을 증폭시킨다.
미국 대통령도 즐겨 먹고, 자존심 센 뉴요커도 줄 서서 먹는다는 고급 수제 햄버거는 그런 안도감의 한 방편이다. 커피보다는 설탕, 우유, 과일주스 중심인 데다 고급스럽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인테리어를 내세운 스타벅스의 인스타그램 한글 해시태그 게시물이 829만개에 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제 음식은 입이 아니라 SNS로 소비되고 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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