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손효림]과도한 아이돌 보호, 팬 멍들고 아이돌 망친다

손효림 문화부장 2023. 7.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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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만지더니 '애플워치죠?' 하며 작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 옷을 올리라고 했다. 어떤 분이 들어와 내가 속옷 검사 당하는 걸 봤다. 너무 수치스럽고 인권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하이브의 계열사가 일본에서 선보인 9인조 보이그룹 '&TEAM'(앤팀)의 팬 사인회에서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해 성추행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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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찾으려 속옷 검사, “연기 지시는 매니저에게”
팬들 몸과 마음 다치고, 아이돌 자립심 형성 저해
손효림 문화부장
“가슴을 만지더니 ‘애플워치죠?’ 하며 작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 옷을 올리라고 했다. 어떤 분이 들어와 내가 속옷 검사 당하는 걸 봤다. 너무 수치스럽고 인권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윗가슴을 꾹꾹 눌러 보더니, 아랫가슴도 꾹꾹 눌러서 너무 당황했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도 아니었다. 아이돌 그룹 팬 사인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항이나 대통령 참가 행사에서는 보통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고 검사 기기로 몸에 닿지 않게 훑는다.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하이브의 계열사가 일본에서 선보인 9인조 보이그룹 ‘&TEAM’(앤팀)의 팬 사인회에서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해 성추행 논란이 일고 있다.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 9인조 보이그룹 앤팀이 8일 서울 동작구에서 연 팬 사인회에서 여성 보안요원들이 손으로 팬들의 속옷을 검사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가수와의 대화를 녹음하면 안 된다며 녹음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피해 내용을 보고 경악했다. 주최 측의 해명은 더 놀라웠다. 행사를 연 하이브 산하 팬 커머스 플랫폼 위버스샵은 9일 입장문을 내고 “전자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해 이를 확인한 것”이라고 사과하면서도 “보안 검색에 비접촉 방식을 도입하는 등 개선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속옷 검사를 한 책임을 팬에게 떠넘긴 데다 보안 검색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팬 사인회에서 가수와 팬은 짧은 시간 1 대 1로 대화한다. 위버스샵은 이를 녹음한 내용이 외부에 유출돼 곤란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난감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그런 말을 안 하게 가수들을 교육하면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은 아이돌 보호를 명목으로 일부 소속사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촬영장 등에서도 아이돌에 대한 소속사의 과잉보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연출가가 아이돌에게 연기 지시를 하니, 매니저가 ‘아티스트와 직접 얘기하지 말고 저를 통해서 해 달라’고 말해 다들 기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촬영하는 아이돌은 한 명인데 담당자가 3명이나 왔다. 메이크업, 헤어, 의상 담당자는 따로 있었고, 이들은 로드 매니저, 일반 매니저, 홍보 담당자였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고 했다.

과잉보호는 K팝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데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든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아주 작은 일이 일파만파 확대돼 회복 불가능한 지경이 되면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고 했다. 이어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작은 위험까지 방지하려면 이중 삼중, 나아가 사중 오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팬들이 몸과 마음을 다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 근시안적 사고다. 아이돌이 누리는 인기와 부는 팬 덕분이다. 지나친 보호가 아이돌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평생 정상에 있을 순 없고, 인기를 장기간 유지하긴 쉽지 않다. 결국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을 챙기던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도 씩씩하게 홀로 나아갈 아이돌이 얼마나 될까. 소속사들은 멀리 내다봐야 한다. K팝이 세계를 호령한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지만, 운영 시스템은 글로벌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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