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과 '개소리'

김병헌 2023. 7.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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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립으로 고속도로 건설은 거꾸로 가고 양평 군민만 피해
비난과 비판, 상식을 저버린 '개소리'가 민주주의 퇴보 부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와 의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피켓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개소리(Bullshit)’라니...비속어 같아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보고 ‘어감’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다소 가신다. 도덕철학자인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해리 G. 프랭크퍼트 교수는 2016년에 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최근 만연하는 ‘개소리’가 무책임한 언어문화의 위험성을 역설한다. 가짜뉴스뿐 아니라 왜곡된 뉴스, 인기몰이를 위해 허위 과장이 가미된 정보, 극당파적인 진영논리에 매물된 밈과 쓰레기 같은 정치적 수사와 주장 등이 ‘개소리’범주에 포함된다고 한다.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제임스 볼이 2017년 기자의 시선으로 집필한 ‘개소리가 세상을 어떻게 정복했는가(Post-Truth: How Bullshit Conquered the World)’라는 책을 들쳐보면 그 파장과 영향을 구체적으로 통찰한 대목에서 대한민국도 '개소리'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볼은 저서에서 "개소리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주체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 언론, 주요 플랫폼 기업, 그리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단언한다. 적지않은 정치인과 언론들이 각각 정치적 목표와 경제적 이익, 아니면 영향력의 확대만을 위해 무책임하고도 교묘하게 개소리를 생산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주변과 공유하는 우리들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극단으로 흐르는 이들의 소행으로만 보기에는 애먼 피해자들이 꽤 된다는 측면에서 위험성을 가늠하기 충분하다.

실제 우리는 지금 주요 사안마다 매번 정치권의 진영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서 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의혹 제기로 본격화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김건희 특혜’ 논란의 전개 양상도 그렇다. 특혜 실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국정조사,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하고 나선 모습에서 그들의 정치적 목표와 영향력의 확대만을 위한 잔영이 어른거림을 느낀다.

민주당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의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회견문을 통해 "(고속도로 종점 변경은)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로 명백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회견은 촛불행동 등 대선 직후부터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쳤던 단체들과 함께했다. 회견장에는 어김없이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 의무’라고 적힌 피켓이 등장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의혹은 국토교통부가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양서면)을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 근처(강상면)로 하는 변경안을 내ㄴ뫃으면서 불거졌다./뉴시스

민주당은 지난 12일 이재명 대표 입을 통해 국정조사까지 언급했다. 이제 단골메뉴 중 하나인 특검만 거론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그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에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요청한다"면서 "국정조사를 시작하자"고 했다. 여기에 여당인 국민의 대응도 뻔하다. 야당의 공세에 맞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우리가 뼈져리게 느끼는 ‘우리 편만 보는 정치’가 만들어낸 이같은 현실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개소리'의 향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당의 입장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정치적 대응이라고 하더라도 민망스럽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마찬가지로 맞서는 게 과연 정상일까? 이 같은 '진영 정치'가 민주주의를 퇴보시킨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다면 국민의힘도 민주당처럼 공당의 자세를 잃어버린 것이다. 쌍방 간의 비난과 비판, 상식을 저버린 극언, 이른바 '개소리'가 되풀이되면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상황은 대한민국을 질식 상태로 몰아간다. ‘정치 실종’과 ‘정치 혐오’ 상태다. 대다수 국민도 정치권에 기대를 갖지 않는 지 꽤 됐다. 대신 강성지지층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양 그들과 입을 맞춰 떠들어 댄다. 이해 당사자인 국민은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개소리'는 하고 다니니까,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긴 하다. 다만 공익으로 포장한 개소리에는 현혹되지 않고 무조건 주위에 옮기지 않을 정도의 지각은 갖추고 있다며 자만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왜 이지경까지 왔을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 등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가 왜 백지화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돌이켜보면 원 장관과 국토부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없지 않긴 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힌 화환과 화분이 1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청사 입구에 놓여져 있다. 대부분의 화환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밝힌 원희룡 장관을 응원하는 내용이 담겼다./세종=이동률 기자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의혹 제기는 민주당이 했다. 나름 정확한 정보 수집과 치밀한 검토 끝에 했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흐름은 다소 달랐다. 정부여당이 정쟁으로 봤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특혜 의혹 연루에 문재인 정부 시절의 총리, 비서실장, 양평군수 등 인사들까지 소환된다. 그러면서 의혹은 진실게임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실질적 피해자는 누군인가? 여야도, 국토부도, 김건희 여사 일가도, 문 정부시절 인사도, 원 장관도 아니다.

이해 당사자인 양평 군민, 즉 국민이다. 민주당은 아랑곳 없이 ‘게이트’ ‘국정농단’ ‘탄핵’ ‘국정조사’ 등을 거론하며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공당이라면 '아니면 말고'식은 아니길 빈다. 그러자 국민의힘도 당연히 문재인 전 정권 인사들까지 소환하며 정쟁의 게이지를 끌어올리며 받아치는 모양새다. 국민들은 "이게 뭐지?"라고 하는 와중에 여당은 '민주당 고속도로 게이트’, 야당은 ‘김건희 로드게이트’로 좌표 설정까지 끝냈다.

물론 원 장관이 반 걸음 정도 물러서는 듯하다. 양평 군민과 여론을 의식해서 스탠스 조정에 나선 듯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여야 모두가 말끝마다 '양평군민'과 '국민'을 팔면서 실체적 진실을 운운하지만 최소한 내년 총선 전에는 진실규명이나 잘잘못을 가리긴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 제기를 한 민주당이나, 되치기에 나선 국민의힘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와 영향력 확대에만 방점을 찍여놓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양평 군민, 즉 국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라는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이번 사안을 보자. 의혹 제기가 없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대안 검토를 통해 최적의 노선을 찾아가는 타당성 평가 단계일 것이다. 노선이 확정 변경된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후도 순조롭게 추진된다면 주민 의견 수렴, 환경부 협의 등을 포함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마치고 종합평가를 통해 국토부가 최종 노선을 선정하게 된다.

물론 이 때 원 장관과 국토부 관계자 등은 회의록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게 순리다. 아울러 지역 주민과 전문가 등의 공개적이고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도 꼭 필요하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개소리'를 중단하고 여기서 제발 좀 빠져주라. 그러면 무탈하게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건설은 진행되리라고 본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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