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수술 받았는데, 진료는 10월에나 된다니…속타는 환자들
13일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우려했던 의료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여러 병원에서 파업에 따른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예정돼 있던 수술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일반 병동도 부분 폐쇄했기 때문이다. 초진 외래환자는 물론 재진환자, 입원환자 대부분이 다른 병원을 옮기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환자들 사이에선 “힘없는 우리들은 파업이 길어지지 않길 바라는 것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응급실 상황도 혼란 그 자체였다. 파업에 참여한 상급종합병원 20여곳 가운데 10곳이 이날 오전 응급실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응급환자 이송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국립중앙의료원과 고대안암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재로 외과·신경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일반골절)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응급 소아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공간에 한해 인력 배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배후 진료영역인 일반 병동이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서 응급실 등이 유탄을 맞았다.
신규 환자 입원에 제한을 둔 병원도 속출했다. 경희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 조선대병원 등이 해당한다. 이들은 응급실 진료만 가능하고 병동 입원은 거의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특정 과목의 진료를 포기한 병원도 나왔다. 전북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외부 산모를 전원받거나 응급 분만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데엔 노사가 모두 합의했지만 비상 상황인 건 사실”이라며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면 입원 일정을 조율하거나 조기 퇴원 등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국에 걸쳐 약 4만명이다. 규모도 크고 직역도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으로 다양해 파업 여파가 상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전체 1300여개 병상 중 이날 운영 중인 병상은 260여개에 불과하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평소 병상 가동율이 90%안팎인데 파업 여파로 20%대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10~12일에는 진료 일정을 당기려는 외래 환자들의 전화로 병원 운영이 마비되기도 했다. 현재 초진 접수는 아예 불가한 상태다.
문제는 이번 파업이 무기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오선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집회는 14일까지 열리지만 파업에는 기한이 없다”며 “오는 주말에 국면 전환이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요구사항의 핵심은 간호사 고용을 대폭 늘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현재 1대 16에서 1대 5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구사항은 간호간병통합 병동의 확대 운영이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사적 간병비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기간동안 감염병 치료를 전담한 지방의료원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 국장은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된 현재 지방의료원의 병상 가동률은 30~40%에 불과하다”며 “군산의료원 등이 재정난으로 노동자 임금을 체불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정부와 사용자가 뒷짐만 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노조 총파업으로 전국 의료기관에서 진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조정했다. 시·도와 시·군·구별로 비상진료대책본부를 구성해 필수유지 업무를 점검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은 경찰청 추산 2만4000명이 참여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서울 도심에서 개최했다.
가뜩이나 서울에 물폭탄이 쏟아져 교통정체가 극심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규모 집회까지 열려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 집결한 시위대는 남대문 방면으로 약 200m에 이르는 세종대로 편도 5개 차로를 점거하고 오후 1시부터 집회를 벌였다.
오후 4시부터 시위대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일본 대사관으로 각각 분산 행진했다. 100m가 넘는 행진대열로 인해 인근 도로가 통제되며 도로 위 차들이 5분 이상 정차해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일부 시민들은 집회에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광화문 소재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이 모씨(61)는 “곧 퇴근 시간인데 이따가 막히진 않을까 걱정된다”며 “안 그래도 비가 와서 퇴근길이 길어질 것 같은데 엎친데 덮친격”이라 말했다.
직장인 장 모씨(28)는 “조금 일찍 퇴근했는데 지하철이 너무 붐벼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며 “최근 들어 집회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불편하다”라고 토로했다.
집회 내내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으나 노조원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치자 노조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편 이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요구하면서 18일째 단식 농성 중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총파업 결의 대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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