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도 고깃집도 안 돼”…범위 확장되는 기피시설
‘집값 영향’ 여지 있는 시설
주민 반대 벽에 걸려 무산
복지기관 특히 ‘속수무책’
“님비 갈등 풀 제도 마련을”
‘혐오시설’이란 단어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수도권의 한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이 소방서 119안전센터에 출동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논란이 커졌다. 쓰레기장 등 기피시설에 국한된 전통적인 ‘님비(NIMBY) 현상’이 사회 필수시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기관, 상업시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수원소방서 이의119안전센터(이의소방센터) 맞은편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는 센터를 찾아 소음 완화 방안을 요구했다. 경기도청 앞에 위치한 이의소방센터는 지난 5월25일 문을 열었다. 사이렌 소음을 우려한 후보지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9년을 표류하다 2021년에야 현 위치로 결정됐다.
이번 사건은 아파트 주민들이 사이렌 소음을 주된 이유로 ‘혐오시설 반대 시위’를 계획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더 큰 논란으로 비화됐다. 아파트 주민 A씨는 통화에서 “혐오시설 반대 시위까지 예고했다는 건 와전된 것”이라며 “소음을 좀 줄여달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민원과 뜻을 달리하는 다른 주민들이 소방센터에 컵라면을 기부하는 등 대신 사과하며 논란이 사그라들긴 했다. 그러나 소방서·파출소 등 안전·치안 필수시설을 두고 벌어진 주민들의 반대 시위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어 왔다. 2017년 서울 금천구에서는 금천소방서 건립을 둘러싸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 공해와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해 반대 행동에 나섰다. 2015년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대치지구대 건축이 인근 아파트 주민 반대에 부딪히며 1년여 만에 무산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비선호시설을 설명하며 “사회 통념상 혐오 또는 기피하는 시설로 여겨지는 것들로, 이를테면 장례식장·쓰레기처리 및 소각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비선호시설을 규정하는 기준인 ‘사회 통념’의 범위가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집값’에 영향을 줄 만하다고 여겨지는 시설이라면 어떤 형태나 목적인지를 불문하고 주민 반대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히고 있다. 대학행복기숙사, 임대아파트는 물론 영화관이나 고깃집까지도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나 혐오 여론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은 님비에 속수무책이다.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약물중독 치료공동체 ‘다르크(DARC)’는 지난 6월 남양주시로부터 정신건강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고발을 당했다. 미신고 시설이라는 점이 고발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바로 옆 학교의 학부모 민원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임상현 경기다르크협회 센터장은 “지난해 12월 남양주보건소와 남양주시 등 20여명 관계자들과 ‘다르크 지원방안 논의를 위한 회의’를 열어 이 자리에서 시설 등록 얘기도 오갔다”며 “이미 시설 이전 민원을 알고 있어 양성화를 위한 논의가 이뤄지던 차였는데 갑자기 고발을 당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13명이던 입소자 중 2명이 이 일로 퇴소했다. 4년간 사고 한 번 낸 적이 없고, 재활과 자립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인데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정 수준에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시설 갈등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어 행정부·의회·주민·제3의 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기구를 조례로 만들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김송이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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