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노모도 응급실 제때 못 들어갔다... 보건의료노조 파업한 병원 안은 텅텅
13일 오후 인제대부산백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앰뷸런스 3대가 줄지어 서있고, 차량에서 내린 환자 보호자들은 발을 구르며 응급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모(56)씨는 공구를 사용하다 칼날에 얼굴을 깊게 베인 남편과 함께 20분째 응급실 입구를 맴돌고 있었다. 김씨는 “근처 병원 파업으로 이 병원 응급실에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바로 처치를 못 받고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뇌경색이 온 시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응급실 앞을 서성이던 노모(49)씨는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 가라고 해서 급히 왔는데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고 하니 불안하다”며 “근처 병원은 파업이라고 해서 어느 병원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부산 지역 환자들은 부산대병원 본원과 양산부산대병원 등이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으로 사실상 진료를 중단하면서 고통을 겪었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병원에 환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혼란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날 파업을 하지 않은 인제대부산백병원과 부산 동아대병원의 응급실은 수용 정원을 초과하는 환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부터 간호사 등 전국 의료진 4만여 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오후엔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 도로에서 1만7000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하는 집회를 열었다. 14일까지 파업을 예고했다.
같은 시각 파업에 참여한 서울 한양대병원 3층 접수 창구 앞은 텅 비어서 한산한 모습이었다. 132㎡(40평) 넓이에 사람은 5명뿐이었다. 접수 대기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도로를 메운 시위 현장과 대조를 이뤘다. 병원 관계자는 “오늘 방문이 예정된 환자들에게 전날 연락을 돌려 ‘파업으로 진료가 어려우니 예약을 미뤄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 직후 가장 붐비는 시간에 접수 대기 인원이 0명인 상황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한양대병원은 직원 중 노조원 비율이 약 70%다. 이날 노조 파업으로 간호사 등 대부분이 자리를 비웠다. 파업에 동참한 국립중앙의료원 1층도 환자는 6명뿐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한 한 80대 환자는 요양병원으로 떠났다. 입원실 관리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전원 조치된 것이다. 이 환자의 보호자는 “부모님이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병원을 옮기라고 해서 병세가 나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희대병원도 응급 환자 접수에 차질을 빚었다.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 입원 중인 췌장암 환자 이모(64)씨는 “이틀 전 받아야 했던 항암 치료를 파업 때문에 아직 받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충남 보령에서 80대 노모를 모시고 한양대병원을 방문한 박모(57)씨는 “진료와 검사 미뤘다가 환자가 큰일이라도 나면 병원이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집 근처 병원에서 두 달 전 ‘큰 병원에 가보라’는 진단을 받고 서울에 숙소도 예약하고 올라왔는데 어젯밤에 진료를 2주 미뤄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더 기다리느냐”고 했다.
의료 인력이 임시 투입됐지만 파업 공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경희대병원에 있던 최경희(55)씨는 오전 예정된 80세 어머니의 척추 수술이 계속 미뤄지자 시계만 쳐다봤다. 최씨는 “수술 시간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파업 참여 중인 서울의 한 병원에 한 달째 입원 중인 권모씨는 대체 간호사의 미숙한 처치에 불만을 토로했다. 권씨는 “혈관을 못 찾아 주사기로 네 번이나 잘못 찌르더니 ‘간호사 자격증 딴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파업으로 급하게 투입됐다’고 하더라”며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나 불안하다”고 했다.
파업이 14일을 넘겨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조 측은 “요구 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무기한 파업할 수 있다”고 했다. 노조는 보건의료 인력 확충과 간호사가 간병인 역할까지 하는 ‘간호간병 서비스’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정당한 쟁의 행위를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의료 재난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비상진료대책본부를 꾸려 의료 차질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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