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넘어 차별·젠더 이슈까지…작업복 기획, 현장 목소리 생생히 전달

이재덕 기자 2023. 7. 1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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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자위원회 7월 정기회의
경향신문 독자위원회 2023년 7월 정기회의가 지난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킬러 문항·학원 단속에 초점 맞춘 ‘사교육 대책’ 한계와 모순 잘 짚어내
기후위기 적응 기획, 앞으로도 환경·인권 문제 등 다양한 접근 기대
‘2030 여당으로 지지층 이동’은 여론조사 데이터에 없는 무리한 분석
출생 미신고 영아를 ‘유령아동’으로 표현한 건 바람직하지 않아
검찰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 소송, 분석의 주체 ‘뉴스타파’로 밝혔어야
정치인의 선동과 갈등 재생산, 악순환의 고리 끊는 역할 고민해주길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3년 7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봉신(여론조사전문기업 조원씨앤아이 부대표), 김지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박은정 위원(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자사고, 특목고 등은 존치하면서 킬러 문항과 학원 단속에만 주력하는 정부 사교육 대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다양한 기사와 칼럼을 통해 조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기획 시리즈가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통해 안전뿐 아니라 차별과 젠더 등의 이슈까지 폭넓게 분석했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정치권의 선동적인 수사와 행태가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상식 = 정부가 최근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실상 총선 대비용 정책 프레임으로 보인다. 사교육 카르텔을 얘기하고 일타강사 세무조사를 하면 여론몰이에 효과적이다. <“유치원~대입, 전 단계 방안 마련은 적절”, “선제적 대응 안 보여”>(6월27일자), <“이게 킬러” 고난도 지문 등 26개 문항…선정 기준엔 ‘갸웃’>(6월27일자) 등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들은 정부 대처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판적인 논조로 핵심 사안을 정확하게 점검했다. 강태중 중앙대 명예교수의 <[시론] ‘대입 전문가’ 훈수대로 킬러 문항 배제가 대책?>(7월4일자), 오창민 논설위원의 <[경향의 눈] 권력자의 수능 지침>(6월29일자), 홍진수 정책사회부장의 <[아침을 열며] 매듭은 풀어야 한다>(6월26일자), 한윤정 전환연구자의 <[세상읽기] 공교육의 가치를 물어야 할 시간>(6월24일자) 등 내·외부 필진의 칼럼도 시의적절하게 게재돼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대변하는 기사들이 많았다는 것도 평가하고 싶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를 다룬 <“우린 가해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도 구제 받을 수 없어”>(7월5일자)를 비롯해 간호사, 조선소 노동자, 이주노동자, 퀴어 축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등을 다룬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신지영 = 작업복 기획 시리즈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가 흥미로웠다. 첫 번째 기사 <똥물에서 일한다고 작업복까지 똥색일 필요는 없다>(6월19일자)는 하수, 폐기물 처리 노동자들의 작업복이 보여주는 계층의 문제를 얘기했고, <안전 장비는 핏이 생명인데…여성 몸에 맞는 보호구가 없다>(6월21일자)는 건설이나 용접 등의 여성 노동자들이 많지 않은 노동 현장에 여성 작업복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문제를 다뤘고, <산불 최전선 ‘물, 불’ 가리지 않는 사투…진화복은 더 진화해야 한다>(6월28일자)는 산림청에서 일하는 분들의 작업복 얘기다. 시리즈 기사마다 예고편도 잘 만들었고, 공들인 그래픽도 좋았다. <대통령실 한마디에 초유의 ‘인사 파행’…술렁이는 교육부>(7월3일자) 등 기사나 제목에 ‘파행’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파행의 ‘파’는 한자로 절름발이 파(跛)자다. 파행이란 단어에는 ‘다리를 저는 것은 비정상이고 안 좋은 것이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장애인 차별에 대해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계속 쓰는 것은 문제다. <미등록 ‘유령아동’ 방지 출생통보제 국회 통과>(7월1일자)처럼 ‘출생 미신고 영아’를 ‘유령아동’이라 표현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안타까운 아이들에게 쓰기엔 너무 안 좋은 표현이다.

김지원 = <‘유령아동’ 막을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입법은 ‘온도차’>(6월26일자)를 읽어보면 ‘여야가 출생통보제나 보호출산제에 원칙적으로는 공감을 하고 있다, 일부 야당에서 보호출산제를 반대하는 이견이 있다’는 내용이다. 입법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제목에 ‘온도차’라고 쓰니까 없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사교육 대책과 관련한 <전문가들 “정부, 사교육 문제 핵심 몰라…학벌 사회 등 본질적인 논의 필요”>(6월22일자)는 학력 전수평가를 부활시키고 자사고와 특목고는 존치하면서 사교육을 타파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모순을 폭넓게 짚어줬다. <1.5도 넘어 기후위기 적응을 말하다>(6월26일자 기획기사)가 1면에 들어가 더 의미가 깊었다. 단순히 기후위기가 문제라는 수준을 넘어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적응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다른 시선에서 다뤘다. <걷는 지상파 위 나는 OTT…‘국민 예능’ 상실의 시대>(6월15일자)는 철 지난 기사 같다. 지상파에서 국민 예능이 사라진 지 너무 오래다. BTS 10주년을 맞아 관련 기사가 많았다. <BTS “낯설고 불안하겠지만 나아가겠다”>(6월14일자)는 3분의 2면을 할애해 크게 썼는데, BTS 10주년의 의미를 분석하기보다는 멤버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조합해 붙인 듯한 기사여서 아쉬웠다.

김봉신 = 여론조사 결과를 다룬 <국민의힘 35%, 민주당 25%, 20·30대 민주당→국민의힘 이동>(온라인 6월22일자)에서 20·30대가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국민의힘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여론조사 데이터에 나오지 않는다. 무리한 분석이다. <교육에서 ‘생태’ 없애려는 서울시의회…조희연 “기후위기에 역행”>(온라인 6월12일자)는 너무 단순했다. 역행을 하면 누가 역행하는지 주체를 분명히 밝혀줘야 하는데 기사 말미에 국민의힘이라고 나온다. ‘악당’이 있다면, 누구인지 분명히 알려줘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1%가 독점하는 성장 패러다임은 지속 불가능”…대안은?> 등 6월29일자에 실린 ‘2023 경향포럼’ 기사들은 신문 지면에 한 번 쓰고 말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 같은 것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권 ‘괴담 몰이’…그 뒤엔 ‘총선 계산’ 있다>(7월3일자)는 여권이 중도층이나 부동층이 민주당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체계를 구축한다고 했는데, 과도한 분석 같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국민들의 우려가 73%, 방류 반대가 80%대 나오는데 민주당이 이에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국민들의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승환 = 작업복 기획 시리즈는 사진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다. 입는 사람들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작업복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의 칼럼 <[이진우의 거리두기] ‘프로파간다 정치’의 위험>(6월28일자)은 최근 벌어지는 각종 사안들의 정치적 공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 교수는 프로파간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해 합리적 토론을 배제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는데, 딱 요즘 상황에 해당한다. 정치적 수사가 너무 강하면 본질을 흐리게 되지만, 기자들은 이런 말을 하는 인터뷰이를 좋아한다. 프로파간다 취재원을 다룰 때는 선동적인 키워드를 중립화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수도권·제주면에 서울시 기사가 많이 나오고,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기사가 많다. 남산 곤돌라, 제2 세종문화회관 건설 등 모두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한 사안들이지만 오 시장이 취임하면서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여서인지 신문에서 그의 말을 많이 받아 쓰는데, 문제점도 있다는 것을 더 짚어주면 좋지 않을까 한다. <그의 한국행은 문턱 넘어 문턱…휠체어 거부하는 ‘K관광’>(6월7일자)은 일본인 장애인이 한국을 여행할 때 겪는 어려움을 소개한 르포인데,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는 공감이 들었다. 기사와 그래픽 모두 이해하기 쉽게 잘 나왔다.

곽경란 = 뉴스타파가 ‘세금도둑 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 시민단체와 함께 검찰의 특수활동비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통해 받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이영렬 돈봉투 파문’ 당시 특활비 내역, 대검 중앙지검 “없다”>(6월30일자) 등의 기사로 보도했다. 다른 언론은 이 기사를 쓸 때 분석의 주체를 뉴스타파라고 밝혔는데 경향신문이 뉴스타파를 뺀 채 시민단체만 명시한 것은 문제다. 경향신문 종합 뉴스레터 ‘점선면’은 팩트(점)와 맥락(선)을 종합해 관점(면)을 통해 이슈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취지의 콘텐츠다. 점선면 콘텐츠 중 <타다의 혁신은 주저앉았을까>(6월28일자)는 타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동안 타다 논란에 대한 기사들은 단편적 팩트만 나열하거나 ‘혁신이 좌절됐다’는 당사자 발언만 소개해 왔다. 점선면 기사는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관점들, 예컨대 택시기사들을 기득권층으로 보는 게 맞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져 풍성하고 입체적이었다. 반면 점선면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지러운 팩트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친 기사도 있었다. <어떤 대법관이 필요한가>(6월21일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분명치 않았다. 대법관의 다양성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대법관 제청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지, 사법부가 변화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지 모호했다.

박은정 = 작업복 기획은 기사에 나온 “현장을 직접 보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급식 종사자의 말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꼼꼼히 담고, 문제점을 짚은 기사다. 안전의 관점을 넘어 차별, 젠더, 계급 등의 키워드를 읽어낸 것도 적절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잘 구현됐다. 마치 작업복을 직접 입어보는 체험을 한 듯했다. 기후 적응을 다룬 시리즈도 의미 있었다. 기후변화 대책에서 완화와 감축 영역에 비해 적응 분야는 논의도 인식 확산도 많이 부족하다. 농업의 변화와 재난 현장 사례를 통해 기후위기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고민을 담았다. 앞으로 기후적응을 둘러싼 환경, 인권, 정치 문제 등의 다양한 질문을 던져주길 바란다. <‘70도 불판’에 아이폰 구우니 찌직 ‘금단의 문’ 활짝…모두들 박수를 쳤다>(7월3일자)는 배터리 교체 자가 수리 워크숍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이 문제를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 자원순환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의미 있는 지적이 있었다. 긴 호흡으로 깊이와 무게감 있게 한국전쟁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연재물 <정전 70년 한반도 영구 평화를 향해>도 경향신문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다. 부산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한 여러 논란들이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홍보를 위한 기사 외에 이런 맥락을 전달하는 기사가 없어 아쉬웠다,

김춘식 = 언론이 권력층에 의존해 뉴스를 생산하는 관행은 과거부터 있었는데 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정치인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은 삼가고 정제된 표현을 썼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굉장히 혐오적인 용어, 선동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언론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이니 이를 기사화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제가 거기서 시작된다. 정치인들의 그런 발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도 수용하는 사람들은 정파성에 기준해서 뉴스를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편을 가르고 갈등을 유발하고 재생산하게 된다.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정치를 할 때 언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순하게 그냥 전달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그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언론 보도가 구성원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언론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의 민주주의 기능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경향신문은 다른 보수 언론이나 다른 진보적 논조를 띤 언론 등에 비해 권력자들보다는 훨씬 더 보통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기 때문에 이 고리를 끊는 시도에 먼저 앞장설 수 있다.

정리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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