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메이저리그 서울 개막전
“하늘에 겨울 구름이 걷히고 맹추위도 흔적을 감춰 운동하기 딱 좋은 날, 야구에 열광한 관중이 운집해 무려 1만여명에 달한 미증유의 대성황이었다.” 1922년 12월8일, 서울 용산 만철운동장에서 미국직업야구단과 조선청년단의 야구 경기가 열렸다. 한국 땅에 야구가 들어온 지 채 20년도 안 된 시기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방한한 것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조선체육회 이사였던 이원용이 일본을 방문 중인 미국팀을 찾아가 성사시킨 일이었다. 한국 야구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총알 같은 볼과 번개 같은 배트에 관중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신기하다는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제아무리 빠르게 굴러가는 볼이나 까맣게 떠가는 볼이라도 척척 받아 쥐는 건 귀신이 붙었다 하겠다.” 당시 경기를 소개한 신문 기사의 또 다른 대목이다. 경기 결과는 어땠을까. 7회까지 0-16으로 몰리다가 8회 내야땅볼로 천금 같은 1점을 얻은 조선청년단은 9회 장의식의 3루타로 ‘고귀한’ 2점을 보탠 끝에 3-23으로 졌다. 메이저리그는 이렇게 한국 야구에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2024년 메이저리그 정규리그 개막전이 사상 처음 한국에서 열린다. 내년 3월20~21일 이틀간 서울에서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시즌 개막 2연전을 치르기로 했다. 한국에 미국프로야구 존재가 알려진 지 102년 만이다. 올스타 선발팀의 친선·이벤트 경기가 아니라 미국팀 간 공식 경기라 더욱 주목된다. 샌디에이고는 현재 맹활약 중인 김하성의 소속팀이고, 다저스는 박찬호·최희섭·서재응·류현진이 몸담았던 친숙한 팀이라 반갑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미국 밖에서 열리는 건 1999년 이후 멕시코 몬테레이, 일본 도쿄(5차례),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호주 시드니에 이어 서울이 9번째다. 메이저리그가 ‘야구 세계화’를 내걸고 해외 경기를 적극 추진해 온 결과다. 지난 6월엔 야구가 생소한 영국 런던에서 시카고 컵스와 세인트루이스의 2연전을 개최해 연일 5만명 이상을 모았고, 내년에도 멕시코·영국 경기를 편성했다. 결국 돈벌이가 목적인 것이다. 그래도, 그 장삿속이 어떻든 간에 국내에서 빅리그를 직접 보는 흔치 않은 기회가 왔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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