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화무십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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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공간을 이렇게 풍류(?)를 담아 선언하고 나면, 격동하던 마음도 가라앉고 '이 풍진 세상'을 견딜 힘이 생긴다.
권모술수와 이합집산이 어디 천하를 경영하는 자들의 세계에서만이랴.
게으른 방식이지만, 상황을 이겨내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십년을 넘기는 권력이 없다는데, 얼굴만 바꾸어 연년세세 권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 느낌은 뭐지? 권력을 상대화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이 세상이 저당 잡혀 있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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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삼류 무림의 세계로구나!’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공간을 이렇게 풍류(?)를 담아 선언하고 나면, 격동하던 마음도 가라앉고 ‘이 풍진 세상’을 견딜 힘이 생긴다. 권모술수와 이합집산이 어디 천하를 경영하는 자들의 세계에서만이랴. 작고 구체적인 삶일수록 더욱 치졸하고 비루한 법.
‘세상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금언은 미리 알려진 모범답안이다. 게으른 방식이지만, 상황을 이겨내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군에 갓 입대한 젊은이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준다. 곤궁한 사람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위로와 용기를 선물한다.
하지만 금언은 진실의 유령. 진실을 담고 있으나 직접 목격하기가 힘들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현실을 그럴듯한 희망의 말로 바꿈으로써 그 불가항력마저도 내 손아귀에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 그렇지, 활짝 핀 꽃도 열흘을 버티긴 힘들지. 변치 않는 진실이긴 한데, 재차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핀 꽃이 도무지 시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피지 못한 꽃망울들은 도무지 필 기회조차 없는 현실 때문이겠지. 권불십년(權不十年). 십년을 넘기는 권력이 없다는데, 얼굴만 바꾸어 연년세세 권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 느낌은 뭐지? 권력을 상대화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이 세상이 저당 잡혀 있어서인가. ‘권불십년’이라 호기롭게 되뇌지만, 현실 권력을 ‘당분간’ 묵인하는 쓸쓸한 알리바이인지도 모른다.(‘십년만 해먹어라. 딱 십년이다!’)
확고한 금언일수록 믿을 수 없다. 화무십일홍이 맞는가? 권불십년이 맞는가? 이토록 삼류 무림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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