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정부의 무책임 인정하면 각자도생 시작된다
[이태원 참사]
[왜냐면]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의 의미③ | 김혜진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윤석열 대통령은 원전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리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 대한 규제”라서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정부의 안전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경찰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군중이 밀집해 다칠 가능성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집회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정부의 철학, 정책 방향, 중요 가치에 따라 예상치 않은 재해나 위험이 잘 관리되기도 하고, 사회적 참사가 되기도 한다.
헌법 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세계인권선언도 제3조에서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생명·안전을 시민의 권리로, 그 권리를 지키는 것을 정부의 책무로 규정한 것이다. 정부는 재난의 예방과 대응, 재발방지대책 마련의 모든 과정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길을 걷거나 축제를 즐기는 시민은 그 시간이 위험하리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시민이 위험을 인식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이태원 참사는 시민의 안전권이 훼손된 사건이며, 정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실패한 사건이다. 정부는 참사 뒤 “국민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지만 실질적 책임을 진 바 없다. 피해자들이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면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언급하며 법적 책임만을 책임인 양 말한다. 그러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훼손한 책임을 사법적 책임으로 국한할 수는 없다. 공직자의 사퇴나 파면, 경질 등도 그런 책임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모든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이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닌 주무부서의 장관이기 때문에 159명이 사망한 큰 참사가 닥쳤을 때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책임회피 발언을 하고, 이태원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국정조사에서는 거짓증언을 해 진상규명을 흔들었다. 국회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으나 대통령이 거부했고,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이런 참사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자신은 알 수 없었고, 수습의 책임도 현장의 긴급구조통제단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법령에 근거해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 여부만을 따질 경우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재난참사의 책임을 사법적 책임으로 국한했다가 책임을 묻지 못할 경우, 정책의 방향을 왜곡하고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유지해 위험을 가중시킨 이들이 재난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롭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과 관행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재난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부정을 인정해버리면, 정부는 참사 뒤에도 우리 사회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안전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돌리기도 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정부에 통제를 요구하거나 사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야말로 각자도생 사회다.
생명과 안전은 모든 시민의 권리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정부에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 재난과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돌리고 혐오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재난참사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실수, 공백, 관행, 잘못된 시스템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바꾸기 위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기를 요구한다. 재난 안전에 대한 총괄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핵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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