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톡] '킹더랜드'의 아랍 왜곡, '조선구마사' 사태로 비춰본 심각성
만약 한 미국 드라마에서 한복을 입은 한국인 역할 배우가 중국식 문화를 따른다면, 이를 '드라마적 허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성난 국내 시청자들에 의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은 이미 문화 왜곡의 심각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K-콘텐츠 '킹더랜드'는 아랍 문화를 왜곡해 사과했고, 새로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13일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 제작사 측은 공식 SNS에 아랍어 사과문을 게재했다. 지난주 방송된 7, 8회에, 인도 국적 배우 아누팜이 연기한 아랍 왕자 사미르의 등장이 발단이 됐다.
극 중 사미르는 호화로운 술집에서 여성들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출연했다. 천사랑에게 한눈에 반해 함께 와인을 마시고 구애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가 하면 구원에게 이성을 밝히는 바람둥이로 낙인찍혔다.
아랍계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슬람 율법에선 음주를 엄격히 금지할뿐더러, 아랍 문화를 비하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장면들이 등장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킹더랜드' 측은 사과와 함께 문제가 된 장면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나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타 문화권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 배려가 많이 부족했음을 통감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문화권의 시청자들이 함께 즐겁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어·영어로 사과문을 게재한 지 하루 만에 아랍어 사과문을 추가했으나, 아랍계 시청자들의 원성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 비평 사이트 IMDB 등에는 여전히 '킹더랜드'에 별점 1점을 남기며 비판 의견에 가세하는 누리꾼들이 다수다. "아랍 문화와 무슬림을 무시하고 비하한다", "아랍 왕자를 바람둥이 캐릭터로 묘사해 불쾌하다" 등의 반응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 국적의 배우 아누팜이 아랍 왕자 역을 연기했다는 이유로, 그의 SNS에는 아랍계 시청자들로 추정되는 해외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이 쏟아지기도 했다. "아랍인을 대표하지 마라", "아랍인의 이미지를 망치지 말라"며 비난 댓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 K-콘텐츠 위상과 반비례하는 타 문화 이해도…'조선구마사'로 비춰본 '킹더랜드'의 심각성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해 K-콘텐츠가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 '킹더랜드'는 넷플릭스 TOP10 TV 비영어권 부문 주간 시청시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날로 높아지는 K-콘텐츠의 위상을 해치지 않도록, 제작 단계에서 해외 시청자들의 문화권을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데 집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종영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 전쟁을 왜곡해 묘사했다가 돌연 공개가 중단되기도 했고, SBS '라켓소년단'은 인도네시아인들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수리남을 마약의 온상으로 그린 것과 관련해, 수리남 당국 측이 직접 유감을 표하기도.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종영된 tvN '장사천재 백사장'은 모로코 영토를 표기한 지도에서 서사하라를 제외한 자료화면을 노출해, 모로코인들의 비난 세례를 받았다. 마치 해외 드라마에서 독도를 한국 지도에서 제외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만큼 아찔한 상황.
'킹더랜드'의 사례처럼 문화 왜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K-콘텐츠는 지난 2021년 불명예스럽게 조기 종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건으로 문화 왜곡의 심각성을 깨우친 바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조선구마사' 1회에선 충녕대군이 서양 사제에게 중국식 소품이 전시된 공간에서 음식인 월병과 만두, 피단을 대접하는 등의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충녕대군을 비롯한 태종 이방원 등의 실제 인물을 왜곡된 이미지로 표현한 점이 지적받았다.
더욱이 '조선구마사'의 경우는 타국이 아닌 자국에서 제작된 드라마로서, 상황은 더 심각했다. 드라마적 허용이 문화, 역사 왜곡과 얼마나 타협할 수 있는지와 그 심각성을 일깨워준 사태였다.
iMBC 백승훈 | 사진출처 앤피오엔터테인먼트, 바이포엠스튜디오, SLL,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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