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칼럼] 한중일 환율전쟁서 살아남는 법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의하면 지난 5월 경상수지는 19억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4월 7억9000만 달러 적자에서 한 달 만에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경상수지는 수출입 부문뿐만 아니라 서비스 교역과 이전소득 등을 포함하는 한 나라의 대외부문 실질수입을 나타낸다. 그동안 대외부문에서의 경상수지 적자로 원화 환율 하방 압력을 받아온 정부로서는 하반기 거시경제 운용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하는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 전환의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올해 하반기 경제의 낙관적 전망은 시기 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내외 거주자의 상품거래를 나타내는 상품수지의 경우 18억2000만 달러로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은 14.7%, 수입은 13.5% 각각 감소하면서 나타난 '불황형 흑자'였다. 그 결과 5월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올해 누적 경상수지는 34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둘째, 우리의 경쟁 상대국인 일본과 중국의 엔화·위안화의 전략적 약세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원화의 대(對)달러화 약세 폭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엔화의 대달러당 가치는 지난달 말 현재 10.2% 하락했다. 위안화의 대달러당 가치는 지난달 말 7.25위안으로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올해 들어선 5.1% 떨어졌다. 일본은 엔저가 경기 호조를 견인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경기 부진이 오히려 위안화 약세를 자초하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지난 6월 중순 33년만에 3만3000엔을 돌파하면서 작년 10월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 일본 경제는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7%로 연율로는 2.7%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는 위안화 약세 기조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내수진작을 위해 금리 인상은 어렵고, 수출 촉진을 위해서는 위안화 약세를 지속시킬 수 밖에 없다.
중국 경제는 올해 1~5월 고정자산 투자는 4% 증가에 그쳤다. 5월 산업 생산도 3.5% 증가에 불과했다. 5월 수출은 작년보다 7.5% 감소했고 수입도 4.5% 줄었다. 5월 16~24세 청년실업률은 20.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주요 30개 도시 신규주택 판매는 코로나19 전인 2019년보다 77% 감소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달러당 엔화 가치는 10.2%, 위안화 가치는 5.1% 각각 하락하는 동안에 원화의 대달러 가치는 4.3% 하락에 그치고 있다. 엔화·위안화와 비교하면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원화의 대달러 가치 하락의 주된 이유는 한국이 지난 1월 이후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면서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1.75% 포인트로 확대된 탓이 크다. 원화의 대달러 가치 하락이 엔화 가치 하락과 위안화 가치 하락 사이에 갇힌 상태가 된 이유는 역대 최대의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에도 불구하고 경기 불황 우려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품목들이 일본의 수출품목들과 이미 경쟁관계에 있고, 중국의 수출품목들과도 보완재 관계에서 경쟁재 관계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엔화와 위안화에 비해 한국의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지속하는 것은 정부로서도 하반기 경제운용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있다.
이같이 한중일 환율 전선이 형성되면서 한국의 거시경제 운용 환경에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원화가치의 상대적 강세가 악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직접투자신고액이 전년보다 54.2% 증가한 77억5000만 달러로 역대 상반기 3위를 기록했다.
제조업 중에서는 첨단 산업분야인 반도체와 2차전지가 포함된 전기·전자(66.3%)와 화공(64.1%) 등에서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물론 대통령 해외 순방을 통한 투자유치 성과가 전체의 약 18%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외국기업들이 원화 가치의 상대적 안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화의 대달러 가치가 엔화와 위안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인 것을 약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경쟁력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원화 가치의 안정적 유지로 외국인 직접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면 외국인 투자유입은 그 자체로 국내투자를 견인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우리 경제의 산업경쟁력 제고로 연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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