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앞세워 노골적 탄압 속내 드러낸 군부… 태국 민주화 ‘빨간불’

허경주 2023. 7. 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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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군부가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피타 림짜른랏(43) 전진당 대표를 탄압하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5월 총선에서 2030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군부 독재를 끝낼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피타 대표의 총리행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13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태국 상·하원은 이날 오후 차기 정부를 이끌 제30대 총리로 피타 대표를 선출할지에 대한 투표 절차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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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통치 끝낼 유력 차기 총리 후보 선출 투표
선관위 "선거법 위반... 의원직 박탈 심사해 달라"
"투표 하루 전 선관위 발표... 영향 미치려는 의도"
태국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13일 의회의 새 총리 선출 투표를 앞두고 방콕 국회의사당에 도착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태국 군부가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피타 림짜른랏(43) 전진당 대표를 탄압하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투표하지 말라’는 압박을 상원에 가한 데 이어, 법치를 명분 삼아 그의 후보 자격 박탈에까지 나섰다. 5월 총선에서 2030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군부 독재를 끝낼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피타 대표의 총리행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13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태국 상·하원은 이날 오후 차기 정부를 이끌 제30대 총리로 피타 대표를 선출할지에 대한 투표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 5월 14일 총선을 통해 전진당이 제1당에 오른 지 2개월 만이다. 의원 750명(상원 250명·하원 500명)의 과반인 376명이 찬성하면 총리가 된다. 피타 대표는 이날 투표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민들의 희망과 격려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다. 아직 나에 대한 의문이 있는 의원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리실 문턱은 여전히 높다. 당장 군부가 장악한 행정부는 물론, 의회나 사법기관도 피타 대표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피타 대표가 출마 자격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총선에 나섰다는 선거법 위반 증거가 있다”며 그의 의원직 박탈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회부했다. ‘헌재 결정 때까지 직무정지’도 권고했다.

태국에선 법적으로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가 금지돼 있다. 피타 대표는 2007년 방송을 중단한 미디어회사의 주식 4만2,000주를 상속받아 보유하고 있는데, 군부는 해당 기업이 여전히 ‘언론사’ 지위를 유지한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선관위가 군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헌법재판소도 이날 피타 대표와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 위헌 여부 심리를 개시했다.

이 사안들은 모두 결론이 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다만 사법기관으로 넘어간 시기가 ‘총리 선출 투표 하루 전’이라는 건 공교롭다. 의원들이 이를 핑계로 “총리 후보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며 반대표를 던질 여지가 있다. 프린야 태와나루밋쿤 태국 탐마사트대 법학교수는 AFP통신에 “선관위가 서둘러 권고안을 발표한 건 총리 선출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총선에서 전진당에 표를 몰아주며 군부 정권 종식을 꿈꿨던 태국 청년들은 분노하고 있다. 전날 밤부터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시위도 벌였다. 이들은 “내 투표를 존중하라” “상원은 국민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지 말라”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특히 2019년의 악몽 반복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 군부는 전진당 전신인 ‘퓨처포워드당’의 대표이자 ‘40대 개혁 기수’로 열풍을 일으킨 타나톤 쭝룽르앙낏의 의원직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박탈했다. 이듬해엔 당까지 헌재에서 정당법 위반으로 해산됐다.

이날 피타 대표가 과반 확보에 실패해도 아예 기회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의회는 19일과 20일 각각 2, 3차 투표를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야당이 군부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2020년 반정부 시위 최전선에 있던 인권변호사 아논 남파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주의 파괴 시도에 복수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 큰 지지를 받았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태국 군경은 전날부터 의회 앞에 기동대 등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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