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마존’ 아냐”…우크라 불만에 피로감 내비친 나토회의
장기화 된 전쟁에 내부 균열·피로감도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사람들은 감사한다는 말을 원한다. 우리는 (주문한 대로 배달하는) 아마존이 아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던 12일(현지시각)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작심한 듯 우크라이나를 ‘저격’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입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다”는 불만을 터뜨리자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월리스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숭고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서도 각국이 자국 방어를 위해 쌓아둬야 할 무기 재고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 국민은 일정한 정도의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차를 맞아 11~12일 열린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서구 국가들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꺾지 않으며 단합을 과시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내부 균열 역시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 주요 7개국(G7)은 장기적인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공동선언’을 내놨다. 그 밖에 튀르키예의 반대로 지연됐던 스웨덴의 가입 문제를 해결했고, 냉전 이후 가장 야심 찬 군사계획 등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선 시기나 일정표는 못박지 않은 채 “동맹국들이 동의하고 조건이 충족될 때”란 조건을 달았다. 그러면서도 수년이 걸리는 가입 절차인 ‘가입국 행동계획’을 면제해 가입 문턱을 낮췄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다”고 말했고, 월리스 장관은 “이곳에서 우크라이나가 얻은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속한다는 일종의 문화적 가입”이라는 평을 내놨다. 하지만 ‘문화적 가입’이라는 기묘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 때 나온 “환영한다”는 입장 표명 이후 여전히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결정을 두고 당사자인 젤렌스키 대통령뿐 아니라 주요 외신 역시 다양한 분석을 쏟아냈다. <뉴욕 타임스>는 ‘나토 정상회의의 성공에도, 분열은 여전’이란 평을 내놨고, <워싱턴 포스트>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의 신중함은 우크라이나를 더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요구와 충돌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우리는 아마존이 아니다”라는 월리스 장관의 말을 인용해 서구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을 지적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의 결과는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서구 국가들 내에 축적되어가던 ‘피로감’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 타협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선 ‘시기를 정하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미국과 독일의 신중론이 동유럽 국가들의 적극론을 꺾은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가입의 문턱을 낮추고 자국 무기고가 바닥나는 상황 속에서도 무기 지원을 확대하는 성의를 보였다.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서도 러시아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는 차가운 ‘줄타기 외교’를 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요 7개국이 떠맡은 것도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대립을 격화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타협책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앞에 놓인 서방의 딜레마를 연장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카미유 그랑 전 나토 부사무총장은 <뉴욕 타임스>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관해 “‘조건이 허락하면’이라는 말은 전쟁이 끝났을 때를 의미한다. 하지만 전쟁을 어떻게, 어떤 지점에서 끝내는지(를 둘러싼 이견)는 여전히 동맹 내부에 존재하는 분열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월급보다 더 받는 실업급여자 28%? “저임금 문제 고민부터”
- 올림픽대로·잠수교 서울 곳곳 통제…‘강한 비’ 정체전선 남하
- 잠기고, 쓰러지고, 흘러내리고…경기·인천 비 피해 속출
- “낙지탕탕이” “똥파리”…혐오·비하 넘치는 이재명표 ‘블루웨이브’
- 9785원 vs 1만620원…최저임금 줄다리기, 18일엔 결론 날까
- 아스파탐 ‘발암 가능 물질’ 분류…섭취 기준은 ‘체중 1㎏당 40㎎’
- “청년 취업, 밑바닥부터” 중 인민일보에 “어찌 입사했는지” 냉소
- 입양 보낸 118마리 암매장…숨 쉬는 널 땅속에 버렸니
- SNS 인기몰이 형형색색 베이글…원래는 ‘율법의 빵’이었다 [ESC]
- 뉴진스·이찬혁만 전체 수록곡 뮤비 찍나? 나훈아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