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특별법’ 반쪽 공청회…유족 “서글픔 넘어 참담”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8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국회는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데 이어, 오늘(13일)은 입법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부터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겠단 방침입니다.
하지만 회의는 시작부터 삐걱댔습니다.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여당 위원들이 회의 시작 약 30분 만에 회의실을 빠져나가면서, 공청회가 '반쪽'으로 열리게 된 겁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당리당략을 위한 법", "비극적 참사까지 정쟁의 수단, 총선 전략용으로 쓰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참사 유가족 10명은 방청석에서 회의를 내내 지켜봤습니다.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기도,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기도 했습니다. 공청회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처음으로 특별법을 논의하는 공청회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서글픔을 넘어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식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의문과 의혹을 해소해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수본 수사, 국정조사, 그 어떤 것도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로 나와서 절규하고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면하였고 지금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한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 유가족들이 힘들고 어려웠던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특별법을 통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겠다는 희망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
■ 야당, 특별법 당위성 강조했지만…반복되는 '단독 진행'
이런 장면, 처음은 아닙니다. 2주 전,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될 때도 국민의힘은 항의 차원에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집단 퇴장했습니다.
앞으로 특별법이 상임위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 이를 때마다 여러 차례 반복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정부·여당의 협조와 합의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오늘은) 특별법을 논의하는 첫 시발점인데 이 첫 걸음에서조차 '재난을 정쟁화한다'고 프레임을 씌우고 나가는 여당을 보면서 아주 깊은 무력감을 감출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여러 가지 교훈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재난 안전과 관련해 아주 높은 수준의 국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비극적인 참사를 정쟁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특별법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이 꼭 필요하단 겁니다.
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서 대대적 수사에 나섰고 국회에서는 국정조사까지 진행됐지만,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도 아직 미완에 그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시간을 끌면서 결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진실도 밝히지 않은 상태로 서서히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재난에 대응하는 하나의 매뉴얼처럼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간사인 강병원 의원도 "특별법은 헌법적 기본권인 생명권과 알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상식 입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여당이 이태원 참사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오늘 공청회에 야당 추천 진술인으로 참석한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없었고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독립된 조사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야당 추천 진술인인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특별법을 통해 국가의 책임 범위를 넓히고 피해자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다며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 여당 "들러리 설 생각 없다…특별법, 위헌 요소 가져"
반면, 여당은 "보기 좋은 병풍처럼 들러리 설 생각은 결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야당의 '단독 진행'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겁니다.
국민의힘 행안위원들은 오늘 회의장을 나간 뒤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에 야당이 들고나올 수 있는 안건조정위, 상임위와 본회의 단독처리 등 짜여진 각본처럼 진행될 야당의 입법폭주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들은 이번 특별법에 대해 "국회는 물론이고 행정부, 사법부의 권한까지 망라된 무소불위의 특조위를 만드는 이 법은 많은 위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의 범위도 유가족과 현장체류자, 해당 지역 거주자와 사업자, 근로자까지 포함해 너무 넓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이 법을 반대하면 참사와 유가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비정한 정권, 나쁜 정당이라는 거짓선동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것"이라며 "대장동 게이트, 돈 봉투 사건, 코인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부패,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해 참사마저 방탄수단으로 삼겠다는 정치적 권모술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분명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고 공동체가 함께 치유해 나아가야 할 아픔이지만, 그 책무를 다하는 것과 특별법을 제정하는 문제는 별개라는 주장입니다.
■ 유족 "왜 참사를 덮으려만 하나…법안 문제 있다면 대안을 달라"
방청석에서 오늘 공청회를 지켜본 유족들은 여당의 불참에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표로 발언에 나선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국회가 역할을 다하지 않으니 우리가 법안을 만들고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검토하고 수정해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주는 일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 여당에서 주장하는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으면 그 대안을 제시해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국가는 진실해야 한다. 잘못이 있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명확하고 분명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성실한 노력이 국민들에게 비춰져야 한다"며 "그래야만 비로소 국민은 국가를 믿고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토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법안 통과는 번번이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특별법은 앞으로 '상임위 180일 이내→법사위 90일 이내→본회의 60일 이내 상정' 단계를 밟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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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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