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병동…암수술 환자 내보내고 응급실 '뺑뺑이'
◆ 거세지는 노동계 하투 ◆
난소암 4기 판정을 받고 국립암센터에서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수술한 A씨는 지난 12일 병원을 서둘러 옮겨야 했다. 수술 직후라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병원 측은 파업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산부인과 병동이 폐쇄된다며 전원을 권고했다. A씨는 국립암센터 의료진에게 대안으로 갈 만한 병원 목록을 건네받고 일일이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10월 이후에나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의 자녀는 "엄마가 이제 마약성 진통제를 겨우 뗐는데, 다음 진료까지 무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처구니가 없다"며 막막함을 호소했다.
13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우려했던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여러 병원에서 파업에 따른 의료 인력 부족을 이유로 예정돼 있던 수술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일반 병동도 부분 폐쇄했기 때문이다. 초진 외래환자는 물론 재진환자, 입원환자 대부분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환자들 사이에선 "힘 없는 우리들은 파업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응급실 상황도 혼란 그 자체였다. 파업에 참여한 상급종합병원 20곳 가운데 10곳이 이날 오전 응급실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응급환자 이송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국립중앙의료원과 고대안암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재로 외과·신경과·산부인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일반 골절)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응급 소아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공간에 한해 인력 배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배후 진료 영역인 일반 병동이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서 응급실 등이 유탄을 맞았다.
신규 환자 입원에 제한을 둔 병원도 속출했다. 경희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 조선대병원 등이 해당한다. 이들은 응급실 진료만 가능하고 입원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정 과목의 진료를 포기한 병원도 나왔다. 전북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외부 산모를 전원받거나 응급 분만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국에 걸쳐 약 4만명이다. 규모도 크고 직역도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으로 다양해 파업 여파가 상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전체 1300여 개 병상 중 이날 운영 중인 병상은 260여 개에 불과하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평소 병상 가동률이 90% 안팎인데 파업 여파로 20%대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파업이 무기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집회는 14일까지 열리지만 파업에는 기한이 없다"며 "오는 주말에 국면 전환이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요구 사항의 핵심은 간호사 고용을 대폭 늘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현재 1대16에서 1대5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구 사항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의 확대 운영이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사적 간병비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감염병 치료를 전담한 지방의료원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 총파업으로 전국 의료기관에서 진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조정했다. 시도와 시·군·구별로 비상진료대책본부를 구성해 필수유지 업무를 점검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경찰청 추산 2만4000명이 참여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서울 도심에서 개최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 집결한 민주노총 시위대는 남대문 방면으로 약 200m에 이르는 세종대로 편도 5개 차로를 점거하고 오후 1시부터 집회를 벌였다.
오후 4시부터 시위대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일본대사관으로 각각 분산 행진했다. 100m가 넘는 행진 대열로 인해 인근 도로가 통제되며 도로에서 차들이 5분 이상 정차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일부 시민은 집회에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광화문 소재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 모씨(61)는 "곧 퇴근시간인데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안 그래도 비가 와서 퇴근길이 길어질 것 같은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 / 김지희 기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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