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예산 3조원을 쏟아붓는데
韓은 세액공제도 눈치를 봐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국회는 스스로 자문해 보길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봤다.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SK텔레콤, 신한은행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반도체 회사를 설립한다. 목표는 세계 1위 반도체 회사다. 이 합작회사에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예산 3조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그런데 이웃 국가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도요타, 소니, NEC, 소프트뱅크, 미쓰비시은행이 작년 말 공동으로 설립한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 '2027년 세계 최초로 2나노칩 생산'을 목표로 출범한 이 회사에 일본 경제산업성이 무려 3300억엔(약 3조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1차 700억엔은 연구개발(R&D)에, 2차 2600억엔은 홋카이도에 설립 중인 신공장 라인에 활용된다고 구체적인 사용처까지 밝혔다.
국영 기업도 아니고, 더군다나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회사에 이렇게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한다고?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재벌들이 만든 회사에 국민 혈세를 몰아줬다"며 난리가 날 것이다.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의 지원을 의회가 앞장서서 반대한다거나, 국민들이 반발한다는 뉴스를 보지 못했다. 일본 언론들도 '히노마루 반도체'라는 용어를 만들어 라피더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히노마루(日の丸)'는 일장기를 가리키는 일본어인데 이 단어가 앞에 붙으면 '국가대표'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한국 얘기를 해보자. 지난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정부 계획을 "알맹이 없는 호들갑 대잔치"라고 혹평하고, 경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다며 공식 논평에 "샤머니즘 정부"라는 표현까지 넣었다. 하지만 재계의 평가는 달랐다. "기업 경쟁력을 위한 투자 인센티브를 환영한다"(전경련)거나 "성장동력을 살리기 위해 세제 지원을 더 해달라"(경총)는 요청이 쏟아졌다.
기업들이 반색한 이유는 정부가 자신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재계가 가업 승계 대책을 요청하자 정부는 증여세 연납을 20년으로 연장하고 최저세율을 재산가액의 300억원까지 확대하겠다고 화답했다. 해외 공장을 국내로 유턴하면 투자 금액의 최대 50%를 지원해주고, 영상 콘텐츠 제작의 경우 세액공제를 대폭 늘려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경기 침체로 국가 세수가 역대급으로 부족한 상황인데도 이런 감세 정책을 내놓은 것은 민간 기업의 투자, 고용 활성화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임대차 3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21대 국회는 출범 이후 논란을 낳은 법안들을 숱하게 양산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원했거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핀셋 법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세제 법안들도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수가 폐지되거나 축소될지도 모른다.
다국적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한국에는 전투적인 강성 노조만 있는 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협조하지 않는 여의도 국회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전 세계 13위를 기록하며 1년 전보다 3단계 더 추락했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더 치고 올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커진다.
이제 곧 내년 세법 개정안이 나오고, 국가 예산안도 발표된다. 경제를 챙긴 국회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망쳤다는 소리는 듣지 않길 바란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기회다.
[채수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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