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아파트 재건축 벌써 삐걱? 서울시가 설계업체 고발한 이유

정순우 기자 2023. 7. 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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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만든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의 조감도./서울시

서울 압구정 아파트 재건축 사업 설계공모 경쟁이 가열되면서 소송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특히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시의 지침과 다른 설계안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특정 건축사를 경찰에 고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압구정 아파트의 재건축 프로젝트가 불필요한 고소·고발로 사업 초기부터 삐걱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3일 서울시와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1일 설계업체인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와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를 사기미수, 업무방해 및 입찰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시는 “두 건축사사무소가 압구정3구역 정비계획안 수립을 위한 설계사 선정을 앞두고 시가 제시한 용적률 등에 부합하지 않는 설계안을 제시해 조합원과 주민 등을 현혹했다”며 “압구정3구역의 신통기획안이 그대로 지어질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압구정3구역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추진되는 재건축 단지다. 신통기획은 인허가 및 심의를 간소화하고 사업계획 초안을 서울시에서 미리 마련해줌으로써 사업 속도를 앞당기고 도심에 양질의 아파트를 원활하게 공급하고자 도입된 제도다.

서울시가 문제삼은 부분은 희림 컨소시엄이 제안한 설계안에 적용된 용적률(토지 면적 대비 층별 건축면적 총합의 비율)이다. 서울시가 마련한 신통기획안은 압구정3구역의 용적률을 300% 이하로 제한했지만 희림 컨소시엄은 360%로 제안했다. 희림은 일반주거지역에서 재건축을 할 때 장수명 건축, 지능형 건축, 제로에너지 건축 등을 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 등을 근거로 60%포인트의 용적률을 추가한 것이다. 반면 경쟁사인 해안건축은 서울시에서 내놓은 신통기획안에 맞춰 300% 용적률로 제안했다. 양측은 이달 1일부터 홍보관을 열었는데, 용적률 차이가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으로 직결되다보니 희림 안에 관심을 갖는 조합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자 해안건축은 이를 문제 삼아 6일 홍보관 전시를 일시 중단했다가 조합의 중재로 재개하는 일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업체 선정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11일 고발 조치를 발표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희림은 1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장수 서울시 공동주택지원과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고발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압구정3구역 일부 조합원은 희림을 고발조치한 서울시 공무원을 상대로 고발장을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으로 주거지역이라면 인센티브를 통해 법적 상한의 1.2배까지 용적률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지구단위구역은 인센티브를 적용해도 계획된 용적률 상한선을 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해안과 서울시는 “신통기획에서 300%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360%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희림은 “아직 주민 공람 중이어서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없는데다, 향후 협의 과정에서 용적률 인센티브가 추가될 수도 있으므로 제안한 것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희림과 해안 양측 주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은 엇갈리지만, 서울시가 직접 개입해 고발까지 한 것은 ‘무리수’라는 의견이 많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법이나 규제를 피해 숨어있는 용적률을 찾아내 제안하는 게 설계사무소들이 하는 일”이라며 “인허가권자인 서울시 입장에서 설계안에 문제가 있다면 심의를 통해 걸러내면 된다”고 말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도 “재건축 사업의 당사자도 아닌 서울시가 설계 확정안도 아닌 공모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지금으로서는 희림의 제안이 법을 어겼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데 사기나 업무방해 같은 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신통기획을 지키기 위해 과잉 대응하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압구정3구역에서 희림의 제안이 채택되면 이미 신통기획안에 맞춰 설계사를 선정한 인근 2구역은 물론, 앞으로 설계 공모를 진행해야 할 4·5구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서울시의 역점 사업인 신통기획이 무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리수’ 논란을 감수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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