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로마시민상
빈미술사박물관서 공수한
그리스·로마 유물 126점
박물관 3층서 4년간 전시
100년 넘게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던, 2m 넘는 남자 조각이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로마 시민만 걸칠 수 있던, 수 m에 달하는 모직 천 '토가'를 걸치고 막 걸어 나오는 듯하다. 1~2세기께 제작된 이 대리석 조각의 주인공은 로마 황제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으로 추정된다. 제작 당시처럼 대리석 위에 입힌 색이 남아 있었더라면 정체 파악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토가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황제는 성공적 원정을 기념하는 개선 행렬에서 값비싼 보라색 염료로 물들인 토가를, 원로원은 보라색 줄무늬 토가를 입었다.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로마 문명을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도 상설전시로 보게 됐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에 설치된 '고대 그리스·로마실'이다. 세계문화실이 2019년부터 이집트실, 세계도자실, 메소포타미아실 등 세분화돼 소개하는 4번째 전시다. 빈미술사박물관 유물 126점을 공수해 2027년 5월 30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란 제목처럼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MBN 교양예능 '신들의 사생활'과 최근 개봉한 여름 대작 영화 '인디아나 존스 5'에서도 볼 수 있듯 그리스·로마 시대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그리스를 계승·발전한 로마 문화는 서양 문명의 근간이다. 고대 신화가 기독교 미술에까지 이어져 염소 다리를 하고 성적 욕망을 대변하는 목동의 신 판(파우누스)은 악마의 모델이 됐고, 날개 달린 사랑의 신 에로스(아모르)는 천사 이미지로 차용됐다. 문학과 미술은 물론 책, 영화, 만화와 컴퓨터 게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아테나의 수호신인 미네르바 흉상은 긴 머리카락 위에 투구를 머리에 얹은 듯한 모습으로, 전략에 능한 전쟁의 여신을 이상적인 미(美)로 표현한다.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나체상을 표본으로 만든 베누스상은 완전한 나신이 아니라 욕조에서 막 나오는 순간을 포착해 인간 신체미 탐구가 절정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언급했던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는 '아름답다(kalos)'와 '선하다(agathos)'가 합쳐진 단어다. 그리스 청동상은 로마제국 시대 대리석 복제품으로 되살아나 당대 상류층 주택에 장식된 느낌을 살려 전시됐다.
1부 '신화의 세계'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을 소개한다. 2세기께 로마에서 만든 '청동 유피테르(제우스) 전신상' '곤봉을 든 헤르쿨레스(헤라클레스)와 아들 텔레푸스 대리석 전신상'은 그리스를 흡수해 로마 신화가 더욱 다채로워졌음을 보여준다. 2부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되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로마 조각상에 주목했다.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과 처진 눈꺼풀을 조각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3부 '그림자의 제국'은 무덤을 장식한 망자 조각들을 통해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길 바랐던 고대 그리스·로마인의 사후관을 소개했다. 전시장 한쪽에 음악평론가, 배우 등 각계 명사 8인이 전시품 중 한 점씩 골라 감상법을 소개한 대목도 흥미롭다. 전시는 무료.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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